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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조대식 의장 재판으로 재연된 ‘고무줄 배임죄’ 논란

입력 : 2021-06-20 11:30:01 수정 : 2021-06-20 11: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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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엄격한 법적용으로 기업가 정신 살려야”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연합뉴스

 

재계에서 ‘배임죄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앞서 대법원이  배임죄를 남발하면 기업가 정신이 위축될 수 있다고 2004년 우려한 바 있으나 여전히 검찰은 기업인들을 배임죄로 옭아매고 있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검찰이 조자룡 헌 칼 쓰듯 배임죄를 적용해 기소한 결과 많은 기업인이 무죄를 선고받고 있다”며 “배임죄 무죄율이 일반 범죄 대비 다섯배 정도 높을 만큼 남발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배임죄를 폐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검찰의 무리한 배임죄 기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법원 “기업 경영은 위험 내재….기업가 정신 위축은 사회적 손실”

 

대법원은 앞서 2019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상대로 한 계열사 유상증자 배임 사건에서 경영 판단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신 회장이 계열사들에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에 지원하도록 한 것이 배임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검찰이 2016년 배임 혐의로 기소했지만 3년 만에 결국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신 회장 측은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가 지분을 갖고 있던 계열사의 '공멸'을 막기 위한 것이며, 또 덕분에 롯데피에스넷은 파산하지 않았다고 당사 항변했었다. 

 

실제로 유상증자 결정이 합리적인 경영 판단의 재량범위 안에 있다는 게 당시 대법원의 무죄 선고 근거가 됐다.

 

신 회장 외에도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석채 전 KT 회장, 강영원 전 햔국석유공사 사장, 이낙영 전 SPP그룹 회장 등도 모두 배임죄로 기소됐지만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아울러 하나같이 검찰이 배임죄를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계기가 됐다.

 

재계에서는 이런 현실로 17년 전 대법원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무색하게 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대법원은 2004년 대한보증보험 경영진의 배임죄에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기업가 정신’을 처음 언급했다. 

 

당시 재판부는 “기업 경영은 원천적으로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며 “경영자가 선의를 갖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도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까지 업무상 배임죄를 묻고자 하면 이는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켜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고 강조했다.

 

이후 대법원은 배임과 경영 판단을 구분하는 5가지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 ▲계열사들의 공동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지 ▲특정인 또는 특정 회사의 이익만 위한 것은 아닌지 ▲지원 대상 계열사의 선정 및 규모 등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된 것인지 ▲지원행위가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시행된 것인지 ▲지원하는 계열사가 위험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객관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를 각각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적기의 유상증자로 계열사 부도 막고 회생시켰는데도 배임죄?

 

최근 SK텔레시스의 유상증자가 법원의 판단에 올랐다. 광 중계기나 유·무선 전송장비, 이동통신 단말기 제조하는 이 업체가 2015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자 유상증자에 나섰고, 당시 계열사로 고부가가치 소재를 주로 생산하는 SKC는 700억원을 투자했다. 이에 SKC 경영진이 부실한 자회사인 SK텔레시스를 살리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유상증자를 참여했다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당시 SKC 이사회 의장이었던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당시 SKC 이사회 의장) 등이 기소됐다. 

 

실제로 조 의장 등 SKC 이사회는 지난 2015년 부실경영 책임을 물어 최신원 SK텔레시스 회장을 퇴진시키는 한편 SK텔레시스 재무상태에 대한 평가와 외부 회계법인의 가치평가 등을 통해 유상증자의 필요성을 의결했다. SK텔레시스는 유상증자 이듬해부터 순이익이 흑자로 돌아서는 등 턴어라운드에 성공하며 회생했다. SKC 역시 지난 1분기 영업이익 818억원으로 2012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후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조 의장 등 SKC 경영진은 부도에 처한 기업을 어렵게 살려냈는데, 돌아온 것은 배임죄 공소장이었던 셈이다.

 

◆기계적·획일적 기준 적용 앞서 경영활동의 목적을 폭넓게 인정해야

 

재계에서는 SKC 이사회 의결과 같이 경영진이 불확실한 환경에서 사업의 지속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이를 등한시해 기업이 문으면 주주 손실은 물론 근로자의 생계, 협력사의 연쇄 피해 등 예측불허의 혼란이 발생하는 만큼 유상증자를 통해 미리 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대기업 계열사가 문을 닫으면 그룹 전체의 신뢰도에 엄청난 타격이 가고 비난 역시 가중될 수밖에 없다. 앞서 대법원이 제시한 판례처럼 특정기업의 리스크만으로 당시 상황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20일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적용은 경영활동에 대한 과도한 간섭일 뿐 아니라 근본적 목적을 도외시한 처벌일 수 있다”며 “구성요건을 보다 명확하게 보완하고, 법원도 엄격하게 판결해야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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