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경험·경륜’으로 포장된 꼰대 정치 청산 기대

최근 대기업 중간급 관리자로 일하는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스스로를 “격동하는 70년대생”이라 농담 삼아 말하는 그는 며칠 전 회사에서 진행한 리더십 교육을 받고 왔다면서 강연의 한 토막을 전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년∼2000년대 초반 출생)에게 ‘소통하자’고 말하는 건 이미 꼰대 인증이래요. ‘MZ세대에게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해야 요즘 트렌드에 맞는 거라고 하네요.”

지난해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이 참패하자 정치권의 한 인사는 “미래통합당이 간판부터 새 인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민 대부분이 박근혜 시절을 부끄러워한다”며 “당시의 네임드(named) 의원들은 전부 간판에서 물러나고, 박 전 대통령과 상관없는, 젊고 스마트하고 매력적인 누군가가 당의 전면에 나서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했다. 과거를 잊고 미래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과거의 간판을 계속 달고 가선 되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적어도 수년 내엔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날 모임의 결론이었다.

장혜진 정치부 기자

36세 MZ세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따릉이’를 타고 홀연히 우리 앞에 등장했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다. 박근혜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던 2011년, 26살의 이 대표를 발탁하던 과정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 전 대통령의 현장 방문 일정 중에 ‘야학 현장’ 일정이 있어 사전 조사를 하던 중 괜찮은 청년이 눈에 띄었다. 교육 봉사 단체를 직접 만들었는데 거기에 학벌도 좋았다.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에 마침 ‘청년’이 필요했던 참이어서 정호성(전 청와대 비서관)이 추천을 했다.”

이 대표는 ‘박근혜 키즈’로 불렸지만, 이후 박근혜정부를 지속해서 비판하며 ‘박근혜 시절 네임드’라는 꼬리표를 떼어냈다. 이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을 정계에 입문시켜 준 데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의 당선으로 국민의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보수, 올드, 꼰대 이미지였는데 당 대표를 보면 이준석”이라며 “정치를 모르는 사람도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면 어디가 더 젊고 역동적이라고 보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표의 출현은 민심과 정치는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하나의 흐름이란 것을 느끼게 한다. “경험과 경륜”을 말한 나경원, 주호영 전 원내대표 역시 이 세찬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이 대표를 향해 “정치권의 변화를 가져왔으면 하는, 한국 정치발전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형식과 겉치레, 고정관념의 틀을 깨자”, “꼰대 정치와 구태정치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자”고 공개 제안했다.(물론 혹자는 “버려야 할 꼰대 문화를 지적하는 게 꼰대 문화”라고도 한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경험이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실수에 붙이는 이름”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국가 의전 서열 8위 MZ세대’ 이 대표의 등장이 기성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과 구습을 바로잡는 배움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장혜진 정치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