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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우려 커지는 중국의 ‘관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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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13 23:03:22 수정 : 2021-06-13 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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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체제 보호 위해 기업 압박
마윈 등 빅테크 기업 수장들 퇴출
이젠 中 진출 외국기업까지 ‘타깃'
韓기업도 희생양 가능성 배제 못해

“얘기해주세요. 오늘은 무슨 날인가요?”

중국 내 유명 전자상거래 기업 샤오훙수(小紅書)가 지난 4일 1400만팔로어를 보유한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린 문구다. 샤오훙수는 매주 금요일이면 주말을 앞두고 마케팅 일환으로 이런 내용을 올려왔다고 한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하지만 4일 이후 샤오훙수의 웨이보 계정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웨이보에서 샤오훙수 계정을 검색하면 법규 위반이 의심돼 사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지난 4일은 금요일인 동시에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톈안먼 사태)’가 발생한 지 3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국 당국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톈안먼 사태를 ‘1980년대 말 발생한 정치 풍파’로 부르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해한다.

업체의 의도는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필 6월 4일에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어 톈안먼 사태를 떠올리게 할 우려가 있자 바로 제재에 들어간 것이다. 샤오훙수 웨이보 계정을 삭제한 데 이어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이 내사까지 착수했다.

궁예의 ‘관심법’이 현대에 들어 중국 공산당에서 부활한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등을 통해 대내외에 내보이던 공산당 체제의 자신감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이 자처하는 ‘대국’과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인다.

시진핑 주석 집권 하에서 공산당 체제 보호를 위한 기업 압박 강도가 더 세지고 있다. 공산당의 표적이 된 대표적 인물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다. 마윈은 중국 금융규제의 후진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당국의 눈 밖에 났다. 이후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는 취소됐다. 알리바바는 반독점 과징금 182억위안(약 3조2000억원)도 부과받았다. 심지어 앤트그룹 국유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기업을 경영할 마음이 남아 있으면 이상할 듯싶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젊은 대표들이 최근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틱톡을 만든 바이트댄스 창업자 장이밍은 연말 CEO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창업 5∼6년 만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타오바오와 1, 2위를 다툴 정도로 회사를 키운 핀둬둬 창업자 황정도 지난 3월 CEO를 그만두고 경영에서 손을 뗐다.

중국 최대 빅테크 기업 알리바바의 마윈이 공산당으로부터 당한 것을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순 없었을 터이다. 공산당의 ‘관심법’이 언제 자신들을 겨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 공산당의 ‘관심법’ 대상이 외국 기업까지 확대될 것이란 점이다. 중국은 지난 10일 미국 등 서방 제재에 참여한 기업 등에 대해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반(反)외국 제재법’을 제정한 뒤 즉각 시행에 들어갔다.

법률에 따르면 당국은 외국 제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개인이나 조직뿐 아니라 개인의 가족, 개인이 고위직을 맡은 다른 조직과 그 조직의 고위직 인사 등도 제재가 가능토록 했다. 사실상 ‘연좌제’나 다름없다.

제재 조치로는 중국 내 자산 압류·동결,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등에 더해 ‘기타 필요한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모호하기 그지없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공산당의 ‘관심법’에 따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중국에 진출한 기업은 자산을 빼앗기고 거액의 손배소까지 당하게 된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중국이 외국 기업에 어떤 이유로 보복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특히 미·중 간 교류가 많은 한국 기업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배제 못 한다. 우리는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에서 중국의 어이없는 행태를 확인한 바 있다. 중국은 ‘한한령(한류 제한령)’을 공식적으로 한 적 없다면서도 보복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 형식적으로 외국 정부와 기업에 보복할 수 있는 법까지 마련했으니 더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위세가 이 정도인데, 1위가 됐을 때 어떤 행태를 보일지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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