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전화 '이혼소송 인권침해 방지 토론회'서 심층면담 사례 공개

"남편이 본인을 사랑하시는 것은 아세요?", "이렇게 남편이 좋아하시는데 그래도 이혼을 하셔야 되겠어요?"
21년간 결혼 생활을 하며 남편의 폭력에 지속해서 시달린 끝에 이혼 소송을 시작한 50대 A씨는 법원 조사관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A씨는 남편에게 머리를 맞아 병원에 입원했던 기록과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했던 기록을 모두 법원에 제출했지만, 법원 조사관은 가해자인 남편의 말만 믿었다고 토로했다.
◇ 폭력 피해자에 "당신이 자꾸 자극하잖아"…이혼소송 경험자 92% "법원 관계자 교육 필요"
한국여성의전화는 10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이혼 소송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A씨 사례를 포함해 이혼소송을 경험한 가정폭력 피해자 4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를 공개했다.
토론회에서 또 다른 가정폭력 피해자인 30대 B씨는 법원 조정위원들로부터 겪은 2차 피해를 호소했다.
2년가량의 결혼생활 중 임신 이후부터 남편의 폭력을 당했다는 B씨는 폭력 증거 자료를 모두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조정위원들은 "사실이냐", "가장 쉬운 유책 사유여서 허위로 가정폭력을 입증하는 게 아니냐" 등의 발언을 했다고 B씨는 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정위원회가 열렸을 때 남편의 한 특정 몸짓에 놀란 B씨가 "저거 봐요"라고 하자 "당신이 자꾸 이 사람을 자극하잖아"라고 말한 조정위원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혼소송을 경험한 사람 대부분은 이혼소송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전화가 지난 3∼5월 이혼 소송 경험이 있는 만 19세 이상 남녀 성인 29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판사, 가사조사관, 조정위원 등 법원 관계자들에게 성평등, 성폭력예방, 가정폭력예방 등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응답이 92.6%에 달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이혼 소송에서 가사조사를 제외해야 한다"는 답변도 92.%에 이르렀다.
아울러 "가사조사관이나 가사조정위원회의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응답도 87.8%로 나타났다.
◇ "가정 폭력 피해자는 가해자 만남 자체가 두려움"…부부상담·자녀 교섭 제도 개선 필요성 지적도
법원 관계자의 폭언 내지 부적절한 언행 외에 부부 상담과 자녀면접 교섭을 강제하는 법 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B씨에 따르면 소송 과정 중 법원에서 전화가 와 남편과 자녀를 동반한 '1박2일 여행'을 제안했다.
B씨가 남편의 폭력 이력을 이유로 여행을 거부하자 법원 관계자는 "그렇게 하면 아이들을 (B씨가) 못 데려온다"며 강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 B씨의 증언이다.
결국 B씨가 "내가 1박2일 여행 가서 흉기 맞으면 법원이 책임져 줄 거냐"고 되묻자 법원관계자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여성의전화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이혼 소송과정에서 부부상담이나 자녀면접 교섭을 원하지 않음에도 제도적 절차상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부상담을 한 사람의 74.7%는 "소송 중에 법원의 명령을 받아서"라고 응답했다. "스스로 원해서"라는 응답은 10.1%에 그쳤다.
부부상담을 거부하지 못한 이유로는 가장 많은 41.0%가 "거부하면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다음으로 "상담명령을 거부해도 되는 것을 몰라서"(37.7%), "거부하면 이혼 소송이 길어질 것 같아서"(32.8%)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 피해자는 가해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라면서 "부부 상담으로 인해 가해자를 다시 만나 가해자의 일방적인 거짓말과 피해자를 탓하는 말을 계속 들어야 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 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스토킹하는 가해자는 자녀면접 교섭권을 신청해 피해자 정보를 자녀를 통해 알아내려고 애쓴다"면서 "정상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폭력 가해자지만 '아버지'라는 이유로 자녀와 강제적 만남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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