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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하루 14건 처리… 형사사건 외 10건 중 7건 심리 못 받아 [심층기획-법원 상고제 개선 옳은 방향은]

입력 : 2021-06-13 12:00:00 수정 : 2021-06-13 13: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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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법 접수 상고사건 4만4328건
대다수가 심리불속행 처리로 기각 처분
재판연구관이 1차 검토 후 대법관에 보고
대법관, 연구관 의견대로 90% 이상 처리
소부, 1분30초 만에 1건 합의 졸속 논란

상고심사·상고부·대법관 증원, 개선 뼈대
법원, 상고심사 선호… 국민 합의 쉽지 않아
외부선 고법 상고부·대법관 증원 더 선호
고법에 상고부 설치·상고심사 병행안도
대법관 18명으로 증원은 미봉책 목소리

‘대법관이 하루에 14건의 사건을 심도 있게, 그리고 국민이 만족할 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가.’

위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산술적으로 대법관이 하루에 14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현재 대법원의 현실이다. 대법원 판단을 받고 싶은 국민은 늘었지만, 제도가 그대로인 탓이다.

인원에 비해 과하게 사건이 몰리다 보니 심리불속행되는 사건이 많다. 심리불속행이란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에서 헌법이나 법률, 대법원 판례 위반이나 중대한 법령 위반에 관한 사항 등이 아니면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10건 중 7건은 심리불속행 처리된다. 제대로 된 심리가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심리불속행 문턱을 넘었다고 해도 상고심 선고까지 하세월이다. 재판 당사자는 결과가 언제 나올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최근 네이버 지식인엔 대법원에 올라간 사건이 6년째 결론나지 않는다며 선고가 언제 날지 묻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작성자는 “아버지께서 회사에서 임금을 받지 못해 소송을 걸었는데, 6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며 “어려운 사건도 아닌데 임금체불 문제를 이렇게 오래 끈다는 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재판 당사자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법원도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턴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통해 상고제도 개선 아이디어를 모으는 중이다. 최근 열린 상고제도 토론회에선 위원회에서 중점적으로 논의 중인 상고심사제 도입,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대법관 증원 3가지 안이 공개됐다. 대법원은 추가 회의 등의 절차를 거쳐 올해 내에 최종안을 선정한다. 전문가들은 어떤 안이 선정되든 국민들이 재판을 충실하게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1건 합의하는 데 기껏해야 1분 30초” 부실한 대법원 재판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2019년 1년간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사건 수는 4만4328건이다. 약 30년 전인 1990년(8319건)보다 5배 이상 늘었다. 대법원 3개 소부에 소속된 12명의 대법관이 1인당 3700여건을 검토해야 사건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셈이다. 근무일수로 나누면 하루에 14건꼴이다.

 

대법관들은 이 많은 사건을 어떻게 다 처리하는 걸까. 대법원 재판을 소개한 논문에 답이 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대법관을 지낸 박시환 전 대법관은 2016년 ‘대법원 상고사건 처리의 실제 모습과 문제점’이란 제목의 논문을 썼다.

논문에 따르면, 상고사건을 가장 먼저 검토하는 건 대법관이 아닌 재판연구관이다. 재판연구관은 상고사건을 검토한 뒤 대법관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대법원엔 120여명의 재판연구관이 있다.

재판연구관은 사건을 본 뒤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전원합의체 회부 등 사건처리 방향에 대한 의견을 써 주심 대법관에게 보고한다. 맡은 사건이 워낙 많다 보니, 주심 대법관은 대부분 재판연구관 의견대로 사건을 처리한다. 박 전 대법관은 논문에서 “신건조 재판연구관이 보고한 의견과 동일하게 처리하는 비율이 90%를 넘는다”고 했다. 대법관이 사건을 검토해 처리한다고 생각하는 일반 국민 입장에선 다소 충격적인 얘기다.

4명의 대법관으로 이뤄진 소부의 합의 과정은 조금 더 놀랍다. 박 전 대법관은 “다른 대법관 주심사건은 어느 사건이 합의에 회부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대법관들이) 합의에 임한다”며 “1건의 합의에 허용되는 평균 시간은 기껏해야 1분 30초 정도를 넘지 못한다”고 했다. 사건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충실한 심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실토한 셈이다.

 

◆상고심사냐, 고법 상고부냐, 대법관 증원이냐

대법원은 최근 상고제도 개선안 뼈대를 △상고심사제 도입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대법관 증원 3가지로 추렸다.

우선, 상고심사제는 사전 심사를 통해 대법원이 심리하는 상고사건을 선별하는 방안이다. 상고이유가 없으면 상고를 제한해 대법원으로 올라오는 사건 수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법원 입장에선 별도 상고부 신설이나 대법관 증원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좋다. 단, 1심과 2심에서 충실하게 재판을 받았다고 해도 3심 재판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은 만큼 대국민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와 상고심사를 병행하는 안도 있다. 권리구제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은 형사사건은 고법 상고부로 넘기고, 민사사건은 심사를 통해 상고를 제한하는 것이다. 고법 상고부 판결에 헌법 위반 등 사유가 있으면 대법원으로 특별 상고도 할 수 있다. 지역 주민의 상고심 법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등 장점이 있지만, 사실상 4심제가 될 수 있다는 점, 상고심 재판의 통일성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 등은 단점으로 꼽힌다.

대법관 증원이 마지막이다. 이 안의 핵심은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수를 현재 12명에서 18명으로 늘리고, 9명으로 구성된 2개의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대법관을 늘리면 어느 정도 숨통은 트이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법원 내부에선 상고심사제, 외부에선 고법 상고부·대법관 증원

워낙 의견대립이 첨예한 사안인 만큼 법조계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상대적으로 법원 내부에선 상고심사제를, 법원 밖에서는 고법 상고부 신설과 대법관 증원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 어떤 방안이든 심리의 충실성을 높여 국민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상고를) 제한하는 게 좋겠다는 입장”이라며 “대법관 증원과 고등법원 상고부 신설은 장기적 방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은 상고심사제뿐이라는 의미다.

고법 상고부 신설에 동의하는 이들은 고법 상고부를 일종의 절충안으로 봤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 증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상고심사제는 (국민 정서상) 거의 될 가능성이 없고 현실적으로 고법 상고부가 괜찮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변호사업계에선 대법관 증원을 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강신업 변호사(법무법인 하나)는 “대법원이 최종심인 건 국민이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며 “대법관 증원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충윤 변호사(법무법인 해율)도 “대법관 증원은 법원조직법만 개정하면 되는 데다 국민 권익도 보장할 수 있어 가장 와닿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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