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정상회담 일주일 앞두고
서방세계에 경고메시지 분석
나발니 “목표·이상 포기 안할 것”
인스타그램에 성명 즉각 반발

러시아 법원이 9일(현지시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사진)가 설립한 단체에 불법 딱지를 붙였다. 오는 9월 19일 총선에서 나발니의 손발을 완전히 묶으려는 시도인데, 미·러 정상회담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서방 세계에 경고장을 보낸 것으로도 풀이된다.
AP통신에 따르면 모스크바 법원은 이날 나발니가 조직한 ‘반부패재단’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했다. 반부패재단은 10년 전 출범해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비리 의혹을 숱하게 폭로해온 단체다. 특히 지난 1월에는 흑해 연안에 있는 호화판 휴양시설이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소유라고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공개해 1억1700만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모스크바 법원은 또 나발니가 9월 총선을 겨냥해 힘을 실어온 지역 네트워크의 활동도 불법화했다. 12시간 넘게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공판에서 나발니가 옥중에서 화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변호사 측 요청은 기각됐다고 AP가 전했다.
러시아 의회는 공판을 앞두고 극단주의 단체 구성원들이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까지 공직 출마를 못 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신속 안건으로 올려 처리했다. 지난주에는 푸틴 대통령 서명까지 마쳤다. 헌법 개정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최장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가운데, 그 중대 길목에 있는 올해 총선에서 나발니 영향력을 최소화하려고 러시아 입법·행정·사법부가 손발을 맞춘 셈이다. 극단주의 꼬리표가 붙으면 해당 단체 구성원은 물론 기부를 했거나 단순히 자료를 공유한 것만으로도 장기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만큼 나발니에 동조하는 인사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나발니 측은 항소 입장을 밝혔다. 나발니 인스타그램에는 “부패가 정부의 기초를 이루고 있을 때 부패에 맞서는 투사들은 극단주의자로 내몰린다”며 “우리의 목표와 이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성명이 올라왔다. 이반 즈다노프 반부패재단 대표도 부패 혐의 폭로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러시아가 얼마 안 남은 자주적 정치운동을 사실상 불법화했다”고 밝히는 등 서방 국가들도 비난에 가세했다.
오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푸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나온 이번 판결에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내정은 회담 의제가 아니다’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나발니 독살 시도와 관련해 푸틴을 “살인자”라고 비난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혀 나발니 처우 문제를 회담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관측됐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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