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소체계는 시대의 변화를 담으려고 노력해 왔다. 1960년대는 도시계획법이 제정되면서 ‘가구방식주소’(도시계획의 큰 블록에 본번, 작은 블록에 부번을 순차적으로 부여)를 시범 적용했고, 1980년대 서울 올림픽에 대비해서 전국 도시의 주요 도로에 도로명을 부여했으며, 1990년대 월드컵과 아셈(아시아·유럽 정상회의)에 대비해 건물번호를 도입했다. 그리고 2006년 ‘도로명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도로명주소를 법정주소로 사용하게 되었고, 2010년대에는 도시의 임차인 증가에 따라 건물 내 상세주소(동·층·호)를 도로명주소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도로명주소는 토지 중심의 주소체계에서 벗어나 도로를 따라 건물에 번호를 매겨 표기하는 방식이다. 도로명주소가 도입되면서 지번주소에서는 표시되지 않았던 건물과 도로에 이름이 부여되고, 이로 인해 의료·통신·택배·긴급구조·방범 등 공공 부문과 생활 영역에서 정확한 위치 찾기가 가능해졌으며, 모바일 시대를 만나 위치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져 국민의 삶도 크게 편리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주소 환경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도시는 지하도시 개발(2020년 서울 영동대로 지하 개발) 등으로 고밀도·입체화가 가속화되고, 건물 중심의 만남이 시설물과 야외(캠핑장 등)로 이동되고 있으며,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는 비대면 배달시장의 확대를 가져왔다.
하지만 지상 건물과 도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존 도로명주소 체계로는 고가도로나 지하도로 구조에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면서 ‘드론’과 ‘자율주행’ 등과 같이 주소와 기술을 접목해야 하는 서비스가 빠르게 개발되면서, 주소체계 변화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대한민국 주소체계는 또 한 번의 혁신을 맞이한다.
지난 9일부터 개정 도로명주소법이 시행됐다. 개정 핵심은 공간을 ‘평면적인 2차원’이 아니라, ‘입체적인 3차원’ 구조로 보는 것에 있다. 국토는 수평으로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지하와 공중으로 입체화되고 확장되며, 지상이 아닌 지하와 공중에서 생활하는 것이 일상화했다. 지하에 있는 복합쇼핑몰에서 특정 상가를 찾거나 지하도로나 공중에 떠 있는 다리에서 위급상황 발생 시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고가·지하도로, 즉 입체도로에 도로명을 부여하게 된다.
또한, 지금까지의 주소는 건물 중심으로 부여했지만, 앞으로는 시설에도 주소가 부여된다. 예를 들면 버스정류장과 택시승강장, 졸음쉼터 등 생활시설과 지진 옥외대피 장소·비상급수시설과 같은 안전시설, 드론 배달점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곳에 사물주소가 생긴다. 이는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배달을 요청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정확한 위치 알림이 필요하고, 이를 이용한 기업의 새로운 서비스 창출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기존 도로명주소가 도로 위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해 이동 편의를 증진시켰다면, 이번에 시행되는 주소체계는 위치 사각지대 해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재난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귀중한 생명을 구하고, 국민의 일상과 사물인터넷(IoT)을 연결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낼 것이다. 새롭게 시행되는 도로명주소 체계가 사회 구조적 변화를 담아내는 것은 물론, 미래의 대한민국 모습을 담아내는 기틀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이재영 행정안전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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