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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도 하나의 학문으로서 여러 분과 학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 따위가 철학을 이루는 핵심적인 학문으로 말해진다. 철학이 다 그렇지만 이 중 형이상학은 특히 더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들린다. 실제로 ‘형이상학적’이라는 형용사가 그런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아주 물질적이고 육감적인 것을 가리킬 때 ‘형이하학적’이라고 한다.

‘형이상학’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메타피지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스스로가 그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니고, 후대에 그의 강의록을 편집하면서 ‘자연학(피지카)’ 다음(메타)에 나온다고 해서 ‘메타피지카’라고 이름 붙였다. 현대에 우리가 형이상학이라고 하면 한편으로는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애초에 그 이름은 단순한 도서 분류의 편의 때문에 나온 것이다.

우리말 ‘형이상학’은 ‘주역’에 그 근원이 있다. “형이상자 위지도, 형이하자 위지기”(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형상 이후의 것은 도라고 하고 형상 이전의 것은 기라고 한다)에서 따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만 말하고 ‘형이하학’은 말하지 않았지만, ‘주역’에 따르면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모두 근거가 있다. 굳이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자연학이 형이하학에 해당할 것 같다.

필자가 학생 시절에 한 은사가 강의 시간에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의 이름이 도서 분류에서 왔다고 분개하신 기억이 난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을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것에 근거를 부여하는 작업인 형이상학이 자연학 다음에 또는 너머에 있다고 보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메타피지카’ 그리고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도를 잘 살린 말인 것 같다.

최훈 강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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