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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왜 부모나라의 말을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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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09 23:32:26 수정 : 2021-06-09 23: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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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원정대 유재석이 미국 교포 출신 제시에게 관용표현을 사용했다.

“혀를 내두르겠구먼.”

그러자 제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혀를 내두른다고? 이거 좀 야한 말로 들린다.”

“그게 아니라, 깜짝 놀라서 입이 벌어진다는 말이야.”

조형숙 서원대 교수·다중문화 이중언어교육

그녀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한다. 제시는 뉴욕의 한국계 가정에서 태어났고 15세가 되던 2003년 가족을 떠나 한국으로 왔다. 한국어로 랩을 하고 연예 프로그램에서 ‘쎈 언니’로 활발한 활동을 할 정도의 한국어 구사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교포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도 많고, 부모가 한국어로 질문을 하면 아이들은 영어로 대답하거나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의사소통을 이어가는 트랜스-랭귀징(trans-languaging) 현상을 자주 관찰할 수 있다. 특정 언어의 경계는 무너지고 필요에 따라 여러 언어가 소환된다. 대화 도중에 다양한 언어 모드가 넘실대고 전통적인 언어 사용방식은 의미를 잃는다.

한국어 사용을 격려하는 부모라도 자녀가 학령기에 접어들고 학교 공부를 따라가려면 가정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키기 어렵게 된다. 점차 자녀의 한국어 수준은 5∼6세의 수준에서 멈추거나 퇴보하기 십상이다. 입말(spoken language)은 유초등 학생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한국어 책을 읽어 글말(written language)의 수준이 받쳐주지 못하면 한국어 문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도 유치원생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어를 주로 구사하는 이민 1세대인 부모와 영어를 주로 구사하는 성인 자녀 사이에 깊은 대화는 쉽지 않다.

중국인은 철도건설 노동자로 미주지역으로 이주하여 캘리포니아 등지로 꾸준히 유입되었다. 이런 중국계 이민가정을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 성과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젊은 부모는 밤낮으로 일하고 아이들은 조부모가 키웠다. 이민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중국어만 사용하는 할머니와는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한국계 이민가정을 보여준 영화 ‘미나리’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

어린 데이비드처럼 중국계 이민자녀들도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본국 문화를 상징하는 할머니를 이상하게 여기게 된다. 하루 종일 중국 식당과 비즈니스에 몰두하는 부모와는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민자녀가 비행을 저지른 경우도 많았고 학업에서 두각을 드러낸 경우도 많지만, 가정에서는 서로 소통하지 않았다. 연구에 의하면, 부모나라의 말을 익히지 못한 경우 임신한 딸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고 가족의 역할은 산산이 부서지기 일쑤였다.

얼마 전 나는 B시청에서 열린 위원회에 참석했다. 한 베트남계 결혼이민자가 말문을 열었다.

“엄마나라의 말을 배우지 못한 채 중학생이 되면 더 이상 엄마랑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요.”

참석한 위원들은 두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다문화 아이들이 미래사회의 인재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에 이중언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나의 생각은 다르다. ‘글로벌 인재’라는 프레임보다는 엄마(혹은 아빠)와 ‘함께’ 인생을 걸어간다는 관점으로 다문화가정 자녀의 언어 사용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조형숙 서원대 교수·다중문화 이중언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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