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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많이 겪는 일”… 軍, 女부사관 성추행 은폐·무마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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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09 12:00:00 수정 : 2021-06-09 15: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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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다음 날 상사에 신고했지만, 무마 시도
A중사 강하게 항의하자 대대장에 늑장 보고
7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모 중사의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 뉴시스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여군 부사관 사건과 관련 “사단장까지 알 필요가 없다”, “사건 초기 민간변호사를 쓸 필요없다”고 권유하는 등 사건을 은폐·무마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9일 국회 국방위 소속 이채익(국민의힘·울산 남구갑) 의원실에 따르면 공군은 성추행 신고 다음 날인 3월4일부터 5월2일까지 두 달간의 청원휴가로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를 즉각 조치했다고 밝혔다. 군은 가해자인 장 중사는 사건신고 2주만인 3월17일 군사경찰의 가해자 조사를 마치고 김해 5비행단으로 파견이동됐고, 피해자 A중사는 청원 휴가는 2주간의 자가격리를 거친 뒤 사건신고 77일만인 5월18일 성남 15비행단으로 전속이동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의원이 유족 측에 확인한 결과, A중사가 집에 온 것은 10여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유족 측은 3월4일 A중사의 부모가 서산에 내려가 부대 인근에서 대대장과 노 준위를 만났으며, 이 만남에서 대대장은 “코로나19 때문에 수도권은 위험한데다 앞으로 조사, 피해상담, 국선변호인 조력을 위해선 부대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군이 분리 조치를 제대로 했다고 밝혔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A 중사가) 부대 내에 머무르면서 은폐 및 무마, 회유 등 2차 가해에 방치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 국방헬프콜 광고가 걸려있다. 뉴스1

대대장과 노 준위 측은 당초 민간 변호사 선임을 계획하던 유족 측에 “가해자가 혐의를 시인했고 증거도 있어 처벌이 확신되니 지금부터 쓸 필요없다”며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했다가 향후 검찰 송치 또는 재판 단계에서 민간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대장과 노 준위 측은 A중사의 부모님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일은 사단장까지 알 필요가 없는 사항”이라며 부대 측의 은폐 사실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고 이 의원실은 전했다.

 

사건 무마 및 은폐 의혹을 받는 노 준위는 군사경찰 수사단계에서 아예 제외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은 “군사경찰은 피해자와 가해자 및 노 상사 등 성추행 사건 당일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4명을 조사하면서 노 준위의 늑장 보고 사실을 확인했지만, 노 준위를 상대로 별도의 조사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A 중사는 성추행 사건 다음 날 오전 회식 자리를 주최한 노 상사에게 최초 신고했고, 이후 노 상사가 레이더반장인 노 준위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노 준위는 그날 오전 신고 사실을 곧바로 대대장에게 알리지 않았다. 노 준위는 그날 오후 숙소에 대기 중이던 A 중사를 불러내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살다보면 많이 겪는 일”이라며 무마 시도를 하다가 A 중사 측의 강한 항의에 오후 9시50분이 돼서야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이후 대대장은 10시13분에 군사경찰 대대장에게 신고했다.

 

이 의원은 “사건 초기 단계부터 군 부대 측이 고인을 관심병사 다루듯 영내에 근신 상태로 가둬뒀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보다 사건을 축소시키는데 집중했다“며 “A중사의 부대출입 기록 등 사실관계 파악을 위한 국회의 요구자료들에 대해서도 군은 ‘수사 중인 사안’ 또는 ‘개인정보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관련 자료 제출들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의원은 “국방부가 국회를 비롯한 유가족 측에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또 다른 은폐행위와 다름 없다“며 “또 당시 사건의 총지휘관인 대대장도 수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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