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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동자 ‘태아 산재’ 보상 길 열리나

입력 : 2021-06-08 17:29:03 수정 : 2021-06-08 2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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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대법 판례 따라 수급 검토
반도체공장 근무 근로자 등 3명
선천 장애·질병 자녀 산재 신청
역학조사·판정까지 6개월 걸려
“인정 받아도 보상범위 협소” 우려
국회선 관련 법안 계류 비판 나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이가 100일을 갓 지난 무렵 정밀 초음파를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의사는 “콩팥 하나가 없다”고 했다. 정수리에는 머리카락이 안 날 정도의 큼지막한 지방종이 있었다. 초등학생이 된 후 자주 혈뇨를 본 아이는 IGA 신증(신장에 있는 사구체 질환의 일종) 진단을 받았다. 신장 기능이 일반인의 10% 수준이라고 한다. 아이가 힘겨워 울 때마다 ‘다 엄마 탓’이라고 자책을 하며 눈물을 삼키곤 했다.

 

20년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한 A씨의 얘기다. 아이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도 무겁지만 아이 치료비로 한 달에 200만원가량 드는 경제적 부담은 어깨를 짓눌렀다. 현행법상 노동자 본인에게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돼 ‘2세’는 산재보험 대상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 최근 A씨를 포함한 전자업계 노동자 3명 자녀에 대한 산업재해 심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태아 산재’를 주장하는 A씨 등이 짐을 덜 수 있을지 주목된다.

 

8일 노동계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은 지난달 A씨 등 3명이 자녀의 장애·질병과 관련해 제출한 산업재해 신청을 받아들여 심사에 착수했다. 공단이 노동자의 자녀를 대상으로 산재보험 수급 여부 심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계에서도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등에 따르면 노동자 본인 외에는 산재보험 수급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선천성 질환 아이를 출산하거나 유산을 겪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요양급여를 청구했을 때도 공단은 이들 자녀가 산재보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 사건을 대리한 시민단체 반올림 조승규 노무사는 “심사를 받지 못하고 반려될 줄 알았지만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공단 측이 입장을 바꾼 배경에는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공단 측 손을 들어줬던 2심 판결을 뒤집고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어머니와 함께 근로현장에서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아이의 선천성 질병까지 산재로 봤다. 공단 측은 “내부적으로 법률검토를 거쳤고 판례의 취지를 반영해 태아에게도 수급권이 있다는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공단 측은 A씨 등의 신청 건과 관련해 “부모가 접한 유해물질과 태아의 건강손상 간에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며 적어도 6개월 후에야 판정이 나올 것이라 내다봤다. 다만 A씨 등의 자녀 질환이 산재로 인정되더라도 보상 범위가 협소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관련법에는 노동자 자녀의 보상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치료비용을 일부 지급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의 산재 입증 문턱 자체가 높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노동자 본인의 질병과 산재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자녀의 선천성 질환까지 명백히 산재 탓임이 입증돼야 산재 승인을 하도록 한 건 가혹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국내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임에도 업무상 질병의 산재 승인율은 지난해 기준 61.4%에 그쳤다. 특히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뇌심혈관계 질병에 대한 산재 승인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 직무유기 행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일부 여당 의원이 노동자의 자녀를 산재보험 수급자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된 채 잠자고 있다.

 

조 노무사는 “국회에서도 노동자 2세 관련 산업재해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등 실질적인 법률 개정작업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병수·박유빈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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