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 미끼로 투자자들 속여
獨 ‘LUB 토큰’ 사기고소 수사중
가격 급등외 규제 미비 등 원인
머스크 시장 개입에 항의집회도

호주의 펀드 매니저 스테판 친(24)은 2017년 ‘버질 시그마’란 가상화폐 헤지펀드(사모펀드 일종)를 만들었다. 친은 “가상화폐 거래소들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로 한 달에 20% 넘는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다”며 지난해까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투자자 수십명에게 9000만달러(약 1003억3200만원)를 끌어모았다. 투자자들은 1인당 적게는 10만3000달러, 많게는 570만달러를 투자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친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범행을 부인하다 지난 2월 뉴욕 맨해튼연방법원에서 “투자자들한테 거짓말했다”고 시인, 최고 징역 20년형에 처해질 위기다.
이처럼 세계적인 가상화폐 투자 광풍 속에서 관련 사기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에서만 피해액이 최소 10배 넘게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에선 가상화폐 가격 불안정의 원인을 제공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향해 항의하는 집회까지 등장했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자료를 인용해 직전 두 분기인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미국의 가상화폐 사기 피해액이 8190만달러(약 913억212만원)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이는 1년 전(750만달러)의 10.92배에 달한다. 올해 1분기 피해액만 5260만달러로 지난해 1년간의 피해액(4870만달러)을 훌쩍 뛰어넘었다.

WSJ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비트코인 가격은 450% 뛴 약 5만9000달러를 기록했고, 도지코인 등 다른 가상화폐 가격도 급등했다”며 “FTC 수치는 사기 피해자들의 자진 신고에 바탕을 둔 데다 미국에 국한돼 (세계) 전체 피해액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독일 경찰은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 기반한 ‘LUB 토큰’이란 가상화폐 사기 관련 고소 사건을 수사 중이다. 이 가상화폐는 하루 최고 수익률 10%를 보장한다며 투자자 수백명을 끌어들였다. 대부분 유럽인이다.
가상화폐 사기의 원인으로는 가격 급등 외에 규제 미비, 디지털 통화의 익명성이 꼽힌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을 지낸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는 “나쁜 놈들은 항상 돈을 따라다닌다”며 “(가상화폐) 산업이 성숙해지고 감시 도구가 좋아지면 경찰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디파이’(DeFi)란 탈중앙화 금융 관련 사기가 느는 추세다. 디파이는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대출, 보험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블록체인 분석 업체 사이퍼트레이스(CipherTrace)에 따르면 올 1∼4월 전 세계 디파이 사기 피해액은 8340만달러로, 지난 한 해치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선 머스크 테슬라 CEO의 가상화폐 시장 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톱일론’(StopElon)이란 단체는 전날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의 테슬라 공장 앞에서 “시세조작을 중단하라”, “트윗을 중단하라” 등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항의 집회를 벌였다. 이 단체는 지난달 같은 이름의 가상화폐를 출시하며 “테슬라 주식을 최대한 사들여 머스크의 경영권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머스크는 트위터를 통해 테슬라의 비트코인 결제 중단을 선언하고 도지코인 띄우기에 나서면서 가상화폐 시장 불안감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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