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8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한 김양호 부장판사에 대해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소멸되는 건 아니나,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한 건 대한민국 판사가 아니라 일본국 판사의 논리”라고 맹비난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한민국 판사는 주권자인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판결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재판부가 소권이 없다고 판단한 데 대해 “김 판사는 청구권은 인정하면서도 사법적으로 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논리로 결론은 일본의 주장과 같다”며 “그러나 이는 하급심 판사가 대법원 판결의 기속력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확립된 인권법 이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 전 장관은 “국제 인권법은 징용청구권과 같이 개인의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에 따른 청구권 만큼은 국가가 함부로 포기하거나 상대국과 협상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국제적 강제규범의 후일 판단에 구속력이 있어야 반인도적 범죄, 인권 문제에 저촉될 수 있는 행위를 함부로 못하게 되고,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 강제징용은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선고된 대법원 판결도 이를 명확히 했다. 피해자들은 자유의 박탈, 구타와 굶주림, 장시간 가혹한 노동 등 노예와 같은 강제수용과 강제노동을 강요당했다”며 “일본 정부와 긴밀한 범죄 공동체를 이룬 일본 기업이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자행한 침해의 정도로 비춰, 모두 반인도 범죄 또는 노예금지와 관련한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추 전 장관은 “징용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 아니므로 소권도 살아 있는 것”이라며 “설령 소권 소멸합의가 이뤄졌다고 해도 그 합의는 현재 무효다. 김 판사의 판단은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으로 무효에 해당함을 간과한 것이다.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16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한다"며 사실상 패소 판결 했다.
재판부는 “개인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돼 노역에 시달린 피해자들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입었다며 강제노역을 시킨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2015년 5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일본 기업들은 재판부가 올해 3월 공시송달로 선고기일을 지정하자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하며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한 차례 열린 변론기일에 일본 기업 측 변호인단은 “첫 변론기일에 변론을 종결할지 예상 못했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주장은 입증도 안됐고 사실관계도 부실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당초 10일을 선고기일로 지정했으나 사흘 앞당겨 이날 선고했다. 이번 소송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선고까지 나온 사건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당초 17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개 기업에는 소송을 취하했다. 서울중앙지법에는 피해자 측 원고 667명이 일본 기업 69곳을 상대로 제기한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 중이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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