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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난 민심 달래기 급급… 알맹이 빠진 'LH 혁신안'

입력 : 2021-06-08 06:00:00 수정 : 2021-06-08 08: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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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인력 20% 이상 단계적 감축
신도시 입지 조사 등 타기관 이전
당정 이견… ‘토지·주택’ 그대로 유지
여론 달래기용 징벌적 조치만 발표

혁신안 주요 내용과 한계
다주택자 고위직 승진 배제
기관장·임원급 성과급 환수
3기 신도시 공급업무 지속
투기사태 재발 방지 의문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강 신호등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으로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와 관련해 인력 20% 이상을 축소하는 고강도 혁신안을 내놨다.

 

신도시 등 신규 택지계획 업무와 시설물 성능인증 등의 업무는 다른 기관으로 이전하지만, 혁신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직 개편안은 결정이 유보됐다. 결국 정부가 구체적인 LH 개혁의 청사진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 여론을 달래기 위해 인원 구조조정과 성과급 환수 등 징벌적 조치만 발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LH 조직 슬림화와 투기 방지 통제장치 등이 담긴 LH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LH 사태의 발단이 된 공공택지 입지조사 업무는 국토교통부로 회수하고, 시설물 성능인증, 안전영향평가 업무는 건설기술연구원 등으로 이관하기로 했다.

 

해외 투자사업의 경우 정부 간 협력사업(G2G)을 제외한 신규 사업은 모두 중단한다. 해외투자 분야 중 컨설팅 업무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로 넘기기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기능 조정과 지방 조직에 대한 정밀진단을 거쳐 현재 1만명 수준인 LH 직원의 20% 이상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LH의 경영관리도 한층 깐깐해진다. 향후 3년간 고위직 직원의 인건비는 동결, 경상비와 업무비는 각각 10%, 15%씩 삭감을 추진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LH 경영평가 등급도 하향 조정해 임직원 성과급도 환수할 예정이다. 퇴직자에 대해서도 자진반납하지 않을 경우 소송 등을 통해 환수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LH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LH 전 직원의 재산 등록이 의무화된다. 모든 직원은 실사용 목적 외에 토지 취득 자체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실수요 외 목적의 주택이나 토지를 처분하지 않으면 고위직 승진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임직원이 보유한 토지현황을 신고하고 관리하기 위한 ‘임직원 보유토지 정보시스템’을 마련하고, 매년 전 직원에 대한 부동산 거래 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기재부와 국토부는 정작 LH 혁신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 개편안은 이날 발표하지 않았다. 당초 정부·여당은 토지와 주택, 주거복지 등을 분리하는 방식을 3가지로 압축해 논의했지만 의견조율에는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정부가 LH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방향을 확정하기도 전에 여론 눈치 보기로 ‘알맹이 빠진 대책’을 내놨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정부가 혁신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은 맞지만 방법론은 아주 미흡하다”면서 “LH 기능을 다른 기관으로 넘긴다고 다른 기관에서 비리가 척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없는 혁신안이 됐다”고 말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LH 혁신방안 대국민 브리핑에 앞서 국무조정실 윤창렬 국무2차장(오른쪽)과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왼쪽)과 함께 인사를 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전직원 재산등록 ‘감시망’에도 투기근절 ‘알맹이’는 빠져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진 이후 3개월 만에 LH 혁신안을 발표했다. 인력 감축과 성과급 축소, 취업 제한 강화 등 LH 임직원에게는 심각한 타격을 줄 만한 내용인 반면 당초 정부가 공언한 ‘해체 수준의 대대적인 쇄신’과는 거리가 먼 김 빠진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강력한 통제·징벌로 투기 원천방지

 

정부가 7일 발표한 LH 혁신안의 기본 방향은 통제장치 구축과 경영관리 강화, 기능·조직 개편으로 나뉜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국토부와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불공정 행위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확고한 대내외 통제장치를 구축하고, 비효율과 방만경영 관행이 팽배한 조직을 엄중히 쇄신해 공공성과 투명성이 높은 조직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LH 사태 재발방지를 막기 위한 통제장치로 LH 전 직원에 대한 재산등록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불법 투기행위에 대한 인사조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실사용 목적 외에 토지 취득 자체가 금지되고, 이미 보유한 실거주용이 아닌 주택 등을 처분하지 않으면 2급 이상 고위직 승진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불법 투기 근절을 위해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준법감시관제도 도입한다. 또 퇴직자에 대한 전관예우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고위직 직원까지 취업제한 대상을 기존 7명에서 529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게다가 LH 직원들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도 상당 부분 토해내야 할 판이다. 정부는 이달 중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확정될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LH에 대한 평가 등급을 하향 조정할 방침이다. 기관장과 임원급에 대해선 경영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관리책무 위반으로 성과급을 거둬들이기로 했다.

◆전문가 “회초리만 있고 알맹이 빠져”

 

정부가 LH 사태에 대해 철저한 감시와 이중삼중의 통제장치를 내놨지만, 정작 알맹이는 없는 반쪽짜리 혁신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관심을 모았던 조직 개편안 결정은 유보했고, 명칭은 달라질지 모르지만 3기 신도시를 비롯한 토지·주택 개발과 공급 업무는 LH가 그대로 맡을 수밖에 없어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LH는 공공 분야 주택사업으로 대규모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데 택지 개발과 리츠 사업 등으로 이를 보전하는 구조”라며 “이런 구조를 무시한 칸막이식 조직 개편은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국민에게 손해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은 “LH 혁신안 자체가 투기 대상자에 대한 체벌과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쪽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며 “공공의 주택공급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보다는 궁극적으로 신도시 개발과 정비사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민간의 역할로 이양하는 쪽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H 땅 투기 의혹을 처음 폭로한 참여연대도 혁신안에 ‘개발이익 사유화 근절’과 ‘공공성 강화’ 등 개혁 내용이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LH는 택지 개발에서 적정한 수익이 발생해야만 하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었다”며 “본연의 주거복지사업을 수행하려면 정부의 재정이 투입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직개편 3가지 시나리오 ① 완전분리  ② 수평분리  ③ 모회사 설립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토지 투기의혹으로 손가락질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조직개편 향배가 빨라야 8월에나 윤곽이 드러난다.

 

정부가 7일 LH 혁신방향을 발표하면서 조직개편 시나리오 3개를 공개하고 공청회 등을 거쳐 이같이 결정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후 최종안이 확정되면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지만, 그때가 각 당의 대선후보가 선출되는 민감한 시기인 데다 LH 조직 분리 등에 반대하는 지역 여론이 워낙 강해 정부 계획대로 개편안이 완성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날 LH 혁신방향 발표가 가장 중요한 숙제를 풀지 못한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정부는 이날 LH 조직개편 방안 3가지 대안에 대해 전문가 검토 등을 거쳐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3가지 안은 토지와 주택·주거복지를 별도 분리하는 1안, 주거복지 부문과 개발사업 부문인 토지·주택을 동일한 위계로 수평 분리하는 2안, 2안과 같이 분리하되 주거복지 부문을 모회사로, 개발사업 부문을 자회사로 두는 3안이다.

 

1안은 LH의 토지와 주택 기능을 분리해 통합 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개발사업 독점 문제가 해소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2·4대책 등 대규모 주택공급 대책의 차질이 우려되는 내용이다.

 

2안은 토지와 주택부문 기능 통합으로 안정적 2·4대책 수행이 가능하지만 주거복지 기능과 토지개발·임대주택건설 기능이 떨어져 주거복지 기능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3안은 2·4대책 수행이 가능하고, 주거복지 부문을 모회사로 두어 주거복지 기능도 강화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그래서 원래 정부가 제시한 안이 3안이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LH를 기능별로 완전히 분리하는 정도의 조직개편안을 요구하며 퇴짜를 놔 원점으로 회귀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청회와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3가지 안 중에서 8월까지 적절한 안을 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후 관련 법령 마련, 9월 정기국회 처리 등의 일정이 이어진다.

 

문제는 여론의 향배다. 일단은 초유의 땅 투기 사태를 일으킨 LH에 대한 해체 수준의 혁신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크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LH 본사가 위치한 경남 진주의 민심이 완전 딴판이다. 조규일 진주시장이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LH 혁신방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고,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가에서도 LH 해체 등에 대한 반대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어떤 식으로든 조직개편이 이뤄지면 이들 분리 기능을 서로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갈등도 예상된다.

 

박세준·권구성·나기천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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