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시간 근로 벌금 10만원 대체
복지시설·소외계층 지원 등 다양
기초수급자 집 수리 도운 봉사자
“나도 누군가 도울 수 있어 뿌듯”
3년간 145만명 투입… 대상 확대
“사회적 가치 크고 교화 효과적”

“영차 영차, 장롱은 저기 밖으로 빼고 책상은 벽으로 붙입시다.”
지난달 28일 경기 양주시의 한 노부부 집에 40∼60대 남성 6명이 찾아와 일을 거들었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인 노부부의 집안 곳곳을 종일 손봤다. 오랫동안 집 관리를 못 했다는 노부부 집안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짙게 묻어 있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좁은 방안에는 각종 물건과 부서진 가구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분주히 물건을 집 바깥으로 나르는 남성들의 이마에는 금방 구슬땀이 맺혔다. 한 남성이 “그동안 많이 불편하셨겠다”고 하자 집주인 전영림(83) 할머니는 “몸도 불편하고 살면 얼마나 더 살까 싶어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너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씨가 ‘고마운 분들’이라고 부른 이들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유죄와 함께 사회봉사를 명령받은 사람들이다. 사회봉사명령은 징역 3년 이내의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내려지는 제도다. 복지시설이나 농촌 등에서 하루 8시간 일을 하면 10만원의 벌금을 대체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날 봉사를 이끈 A(46)씨는 이삿짐센터 팀장 출신이었다. 그는 지난해 회사 사장과 다투다 그의 뺨을 때린 혐의(폭행)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고용을 일삼는 사장에게 항의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A씨는 “벌금이 선고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털어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월수입이 150만원 이하로 줄어든 데다 가족 중 한 명이 백혈병 환자여서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사회봉사를 신청한 그는 일주일에 이틀씩 나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A씨는 “비록 폭행죄를 저질러 오게 된 것이지만 봉사활동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돼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며 “사회봉사가 끝나더라도 개인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국토계획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B(62)씨도 봉사에 동참했다. 그는 이웃들과 농가 도로를 넓히는 공사를 하다 분쟁에 휘말려 법정에 섰다. B씨는 “2주간 매일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남을 돕다 보니 사회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됐다는 생각도 든다”며 “봉사활동이 끝나도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다른 봉사자들도 봉사활동을 통해 잘못을 뉘우칠 뿐 아니라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경범죄의 경우 사회봉사명령제도가 벌금보다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사회봉사를 통해 벌금에 대한 부담감도 낮추고 ‘건강하게’ 사회에 복귀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노인 복지센터에서 사회봉사를 했던 사람이 봉사 기간 동안 성실성을 인정받아 해당 센터에 채용된 사례도 있었다.
7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사회봉사에 투입된 인원은 145만명이다. 2013년부터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신청을 받아 사회봉사명령대상자를 투입하는 ‘사회봉사 국민공모제’를 시행 중인데, 이를 통해 약 150억원의 경제적 지원 효과가 발생했다. 긍정적인 피드백이 이어지면서 법무부는 사회봉사명령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벌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게는 벌금형이 사실상 구금형처럼 운영될 수 있다”며 “사회봉사제도를 활성화해 서민들의 벌금 부담을 낮추고 교정시설 과밀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벌금은 경제 취약계층에게는 아주 중한 형벌이 되고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처벌 의미를 갖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며 “사회봉사명령제는 벌금형보다 사회에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현모·이종민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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