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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뭍의 만남’… 우리가 몰랐던 부산

입력 : 2021-06-08 05:00:00 수정 : 2021-06-07 20: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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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부산…’
조선통신사·일본사절단 교류 상징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첫 개항장
항만도시로서 위상 갖춰가기 시작

6·25 거치며 피란민 몰려 큰 변화
‘국제시장’·‘삯국수’ 등 탄생 배경
전국 각지 문인·화가들도 몰려들어
국립민속박물관의 특별전 ‘부산, 바다와 뭍의 나들목’은 사람과 물자, 문화가 활발하게 들고나는 항구도시 부산의 모습을 조명한다. 연합뉴스

영조대 조태억이 이끌고 조선통신사 행렬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일본인 관리들과 교역물품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양국 간 교류의 상징이었던 조선통신사의 일본행이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곳은 부산이었다.

‘동래부사 접왜사도’는 동래의 지방관이 일본사절단을 맞는 그림이다. 일본사절단은 조선의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에 예를 올리고 동래부사의 치하를 받았다.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부산은 ‘국경도시’다. 조선통신사, 일본사절단의 활동이 실질적으로 부산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었다는 점을 보면 이런 특징은 오래된 것임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도시는 관문이었다. 사람과 물자, 문화가 쉼없이 들고났고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해갔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특별전 ‘부산, 바다와 뭍의 나들목’이 전하는 부산의 특징이다. 부산광역시와 함께 하는 전시회는 8월까지 이어진다.

◆부산이라 가능했던 국제시장

1876년 체결된 강화도조약으로 첫 개항장이 된 부산은 이후 꾸준히 항만도시로서의 위상을 갖추어 갔다. 1883년 11월 부산해관이 개설되고 한·일 간 무역량이 증가하자 매축공사(바닷가나 강가를 메워서 뭍으로 만드는 공사)를 벌여 창고부지를 확보했다. 일제의 지배력이 강해진 이후에는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만들기 위한 공사가 이어졌다. “1900년대 항만으로서의 기본 골격과 (일본인들이 자치권을 가진) 전관거류지 주변 도로확장공사”가 마무리되었고, 1910년대에는 “도로와 철로 확보, 부산항 배후부지 확보 등 항만도시로서의 모습”이 완성됐다. 1920년대의 배후 공업단지로서의 영도 건설 등을 통해 근대도시로서의 기반을 확충한 부산은 이제 “가덕신항만 건설, 북항 재개발 등을 통해 유라시아 물류의 중심지, 해양교류문화의 거점도시로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물산이 모이고 퍼지는 거점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부산의 특징은 ‘국제시장’으로 잘 드러난다. ‘도떼기시장’, ‘자유시장’으로 불리다 1950년 국제시장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곳에서는 미군에서 흘러나온 군용품, 해외 수입품에다 한국산 제품까지 거래되며 성장을 거듭했다. 1952년 국제시장의 하루 거래량은 약 10억원으로 현재의 가치로 따지면 36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부산문화 발전의 토대가 된 피란민

6·25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불행한 사건이지만 부산이 급성장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 도시에 새로운 문화가 싹트는 발판도 됐다. 무려 60만 명, 피란민의 집결은 그만큼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히는 밀면은 피란민들이 만든 음식이다. 북한에서는 감자 전분을 식당에 가져 가면 반죽을 만들어 국수를 뽑아주었다. 이 국수는 만들어주는 삯만 받아서 ‘삯국수’라 불렸는데, 부산으로 피난 온 북한 사람들은 미군 배급 밀가루로 삯국수를 만들어 밀면의 재료로 삼았다.

밀면을 부산에 소개한 이들이 실향민들이었던 만큼 이 음식에는 아픔 또한 짙게 깔려 있다. 밀면을 처음 만들어 판해했다는 내호냉면의 유복연은 임종 직전에 가계도와 고향마을 지도를 남겼다. 또 부모님께 보내는 형식의 편지에는 “생사를 알지도 못하고 5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며 “통일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피란민들 중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문인, 화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도심의 다방에서는 시화전을 열거나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주며 생업을 이어갔다. 대한도기는 화가들을 고용해 한국적인 풍속과 풍경을 주제로 그린 장식용 접시를 팔아 인기를 얻었다. 도기에 그림을 그린 화가 중에는 이제는 대가로 널리 알려진 김환기, 변관식 등이 있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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