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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김효영 "듣는 이를 치유해주고 감동 주고 싶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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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06 09:40:00 수정 : 2021-06-06 09: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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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전국 오디션’ 우승
코로나로 오디션 예선부터 결선까지 온라인 진행
새벽마다 연습실로 달려가 노래하며 고군분투
"세미파이널 진출을 목표 삼았는데 꿈꾸는 느낌”
제 67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에릭&도미니크 라퐁 콩쿠르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김효영. 유치원 때부터 성악가로 무대에 오르는 자신을 그림 그렸다고 한다. “더 큰 꿈은 인생을 제 음악에 담아서 듣는 이를 치유해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성악가가 되는 겁니다.” 허정호 선임기자

젊은 소프라노 김효영은 지난해 10월부터 몇번을 새벽이면 일어나 목을 풀어야 했다. 그리곤 연습실로 달려가 잠겨진 문을 열고 불을 켠 후 역시 새벽잠을 설친 피아니스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애쓴 보람은 헛되지 않았다. ‘오페라의 여왕’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을 배출한, 후원자를 기려 올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에릭&도미니크 라퐁 콩쿠르’로 개명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전국 오디션’에서 지난달 16일 우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콩쿠르가 예선부터 결선까지 ‘줌(화상회의)’으로 진행된 거예요. 결선 때도 ‘시상식 1분 전 전화를 준다’고 했어요. ‘전화 안 오면 집에 가면 된다’고…. 하하하. 그래서 노래 부른 후 기다리는데 국제전화가 걸려와서 받았더니 ‘축하한다’고 우승 소식을 알려줬습니다.”

 

다시 음악 활동을 위해 독일로 떠난 김효영은 지난달 우승 직후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신영옥·홍혜경 선생님, 은사인 박미혜 교수님이 우승한 오디션이어서 참여하는 것만도 영광이고 세미파이널 진출을 목표 삼았는데 꿈꾸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1954년 창립한 이 전통의 콩쿠르는 ‘전국 오디션’이란 이름에 걸맞게 진행된다. 지난해 9월 사전심사로 시작된 이번 콩쿠르에선 1200여명의 지원자가 참가 신청했다. 이 중 1차 심사를 통과한 성악가 600여명이 미국 전역 31개 지구에서 각각 열린 오디션에 참가했다. 이 관문을 통과한 141명이 다시 10개 도시에서 오디션을 치러 23명이 준결승에 진출했고 그중 10명이 다시 결선에 진출한 끝에 김효영을 포함해 다섯명이 우승자로 선정됐다. 주최 측은 콩쿠르 67년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오디션을 온라인으로 실시하면서 이를 랜선 생중계까지 했다.

 

서울대 음대 졸업 후 미국 뉴욕 줄리아드 음대 석사 과정을 다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부터 국내에 머문 김효영은 9개월에 걸친 콩쿠르 일정 중 여섯 차례나 미국 시각에 맞춰 새벽에 노래를 불러야 했다. 여러모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워야 하는 불리한 처지였다. “우선 처음에는 새벽 다섯시에 문 여는 연습실을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다른 경쟁자 대부분은 극장 소속 가수여서 자기네 홀에서 제시간에 하면 되는데 저는 노래 부를 데를 찾아다녀야 했어요. 다행히 ‘그냥 문 열고 들어가서 쓰라’고 해준 고마운 곳(MJ홀)이 나타났어요. 심사가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새벽에 가서 연습했죠. 전날 일찍 자고 자정쯤 일어나 목풀고 화장하고 스트레칭하고나서 연습실로 운전해갔죠.”

바다 건너로 목소리와 영상을 보내는 일도 녹록지 않았다. 마이크도 직접 여러 개를 사서 시험해 봐야 했다. “인터넷 연결도 처음에는 오디션 중 끊긴 거에요. 그래서 홀에서 장비를 업그레이드해주고…. 노트북 카메라로 영상을 보내는데 위에도 놔보고 아래도 놔보고, 불도 켰다 껐다…. 처음에는 ‘마이크에 잘 들어가는 소리로 노래해야 하나’했는데 결국 잘하면 잘하게 들리고, 못하면 못하게 들리더라고요. 실력은 감춰지는 게 아닌 거였죠.”

 

코로나19 때문에 거동도 쉽지 않은 시대에 지난 9개월은 오로지 콩쿠르 준비에만 집중했다. “심사마다 시간이 나서 ’준비됐다’ 싶을 때까지 연습했어요. 아침에 연습하고 저녁에 연습하고. 한 음 가지고 한 시간씩 할 때도 있고, 안되는 부분은 입 모양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고, 두성으로 했다가 진성으로 했다가, 안되면 될 때까지 했죠. 그런데도 안된 것도 있더라고요. 막상 파이널 영상을 되돌려 보니. 하하하.” 

 

‘전국 오디션’이란 명성에 걸맞게 예심부터 결선까지 모든 심사에는 미국 전역 오페라 감독이 다수 참여했다. 프랑스와 독일 명문 오페라 극장 감독도 심사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자연스레 신인 성악가가 오페라 무대 실력자에게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만드는 것도 이 콩쿠르 목적이다. 또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에게 잘한 점과 고쳐야 할 점 등을 알려줘 실력 향상을 돕는다. “그분들 앞에서 부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마음이었죠. 경선 때마다 피드백도 받는데 파이날 심사위원 피드백은 마침 오늘 온라인으로 받아요.” 쑥스러워하는 김효영을 채근해 그간 어떤 심사평을 받았는지 묻자 ‘스페셜한 소리’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영 아티스트’인데도 프로페셔널하게 어려운 연기도 잘 운영한 게 인상적이었고 지적할 문제는 거의 없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권위 있는 오디션인 만큼 우승 소식은 미국 뉴욕타임스에도 실렸는데 김효영에 대해선 “가수로서 대성할 것이 예감된다”는 후한 평을 했다.

서울대 성악과 졸업 후 줄리아드 석사 과정도 끝마쳐가는 김효영은 이제 자신의 온전한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야 한다. 소프라노 중에서도 경쾌한 움직임과 높은음으로 복잡한 꾸밈음이 있는 곡을 화려한 음색으로 부르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다. 음색은 청아한 리릭 소프라노인데 콜로라투라로서 테크닉도 가능해서 택한 길이다. “대학교까지는 발성, 소리 잘 내는 걸 연구했다면 줄리아드에선 나만의 개성이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 그것을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공부했습니다. ‘소프라노가 이렇게 많은데 왜 나를 작품에 써야 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도록 저를 계발했죠.”

 

콩쿠르 우승자로서 김효영 앞에는 우선 세계 최정상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설 기회가 기다린다. 또 그의 재능을 알게 된 세계 여러 극장에서 초청 의뢰가 오고 있다. “노래하는 게 지겨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지칠 때는 있었죠. 특히 콩쿠르. 경쟁하며 노래 부르는 게 힘들긴 해요.” 그런데도 김효영은 이제는 오페라 극장이 많은 유럽에서 열리는 콩쿠르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지금 꿈은 성악가가 되는 것이고 더 큰 꿈은 인생을 제 음악에 담아서 듣는 이를 치유해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성악가가 되는 겁니다. 부르고 싶은 배역은 오페라 ‘루치아’의 주인공 ‘루치아’요. 마지막에 이십여분에 걸쳐서 남편을 죽이고 미쳐서 부르는 아리아가 있어요. 혼자 이십여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작품인데 언젠가는 그만한 능력을 갖춰서 역할을 멋있게 소화하고 싶습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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