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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인문정원] 왜 고장 없는 물건을 만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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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28 22:27:21 수정 : 2021-05-28 22: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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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새 제품 팔려고 결함 심어
과소비 초래 ‘진부화 전략’도 문제

집에서 쓰는 프린터가 고장 났다. 출력하는 도중 롤러 사이로 들어간 인쇄용지가 걸리면서 작동이 멈춘 것이다. 프린터를 해체해서 종이를 빼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급하게 출력할 원고 때문에 난감해진 그 순간 ‘기업은 왜 더 견고한 프린터를 만들지 못할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들은 왜 수명이 긴 컴퓨터, 고장 없는 프린터를 만들지 못할까?

옛날에는 물건을 아껴 쓰고, 고장 나면 고쳐 썼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는 옛 물건이 집 안에 드물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계를 물려받아 쓰는 일도 흔했다. 우리는 물건을 “꿰매고, 수리하고, 수선하면서” 대를 이어 물려 쓰는 걸 자랑스러워하던 시대에서 낡은 것은 버리고 새것을 사 쓰는 소비주의가 미덕이라고 부추기는 시대로 넘어왔다. 어디에나 물건은 차고 넘친다. 기업은 쉬지 않고 물건을 만들고, 소비자에게는 ‘더 빨리, 더 많이 소비하라! 그래야 사회가 성장한다!’라고 설득한다.

장석주 시인

제품의 내구적 견고함은 생산의 죽음을 낳는다. 기업의 처지에서 제품은 빨리 수명을 다하고 폐기돼야 새 제품을 팔 수 있다. 애플은 아이팟 배터리를 만들 때 수명을 18개월에 맞춰 설계했다. 아이팟 배터리는 수리가 불가능했다. 소비자는 18개월을 주기로 새 제품을 사야 했는데, 이것은 기술력의 한계 때문이 아니다. 제품의 긴 수명은 수요의 순환 주기를 늘리고, 생산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런 까닭에 애플은 일부러 제품에 기술적 결함을 심은 것이다.

우리가 쓰는 컴퓨터, 프린터, 스마트 폰, TV,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따위의 내구성은 영원하지 않다. 기업은 제품의 순환 주기를 앞당기려고 제품에 기술적 결함을 심는다. 기업은 과잉 생산이 자초한 위기를 넘어서려고 진부화(obsolescence)라는 스킬을 쓴다. ‘낭비 사회를 넘어서’를 쓴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세르주 라투슈에 따르면, ‘계획적 진부화’를 “인위적으로 공산품의 수명을 단축시켜 새로운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심리적 진부화’도 제품 순환 주기를 줄이는 마케팅 전략의 하나다. 이 전략은 쓰던 걸 버리고 새것을 구매하는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다. 기업은 자주 새 디자인, 새 기능을 탑재한 새 모델을 내놓고, 우리를 과시적 소비로 유혹한다. 미디어와 광고는 우리 안에 좌절된 욕망의 긴장을 조장하고, 구매 욕구를 부추긴다. 우리는 유행에 편승해 멀쩡한 스마트 폰을 버리고 새것을 산다. 심리적 진부화가 구매 심리의 문턱을 낮추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낭비가 미덕이라고? 이건 미친 소리다. 낭비는 지구를 쓰레기로 뒤덮는 원인이다. 인류를 기후변화라는 위협에 노출시켰다. 계획적 진부화는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침투해 과소비를 일으키고, 소비주의 사회를 이끄는 첨병 노룻을 한다. 계획적 진부화란 유령은 제품의 소비와 순환 주기를 줄여 더 많은 쓰레기를 양산한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 삶과 도덕을 진부화로 잠식하고, 플라스틱 쓰레기 따위로 생태계에 점점 더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품에 구현된 계획적 진부화는 분명 반생태적이고 반생명적이다. 인류를 자멸의 악순환으로 내모는 이런 전략을 언제까지 좇을 것인가?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아라! 이것은 악마의 속삭임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기대는 몰가치적 소비사회는 인류를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소비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지금은 머리를 맞대고 지구를 폐기물에서 구할 수 있는 윤리적 소비와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해 고민할 때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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