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개의 시나리오로 20년 후를 전망
美와 글로벌 협력체제, 갈등·대립 완화
호전적인 中, 규칙 무시 땐 국제적 혼란
주도권 놓고 ‘경쟁적 공존’ 이어 갈 수도
“인구·환경·경제·기술, 역학관계 변수”

글로벌 트렌드 2040/미국 국가정보위원회/박동철·박삼주·박행웅·정승욱 옮김/한울엠플러스/1만9000원
2040년, 세계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주도하는 열린 민주주의가 다시 유행하는 열풍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급속한 기술 진보는 세계경제를 변모시키고 글로벌 협력 체제는 세계적 과제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사회적 대립을 완화할 것이다. 미국이 민주주의 부활을 주도한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사회적 통제와 감시로 스스로 혁신을 질식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민주주의 르네상스’ 시나리오다.
반대로 중국 같은 주요 강대국과 지역 강국이 국제 규칙과 제도를 무시하면서 국제체제가 방향성을 잃고 혼란하며 불안정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협력 시스템이 약화하면서 경제성장의 불균등이 심화하고 기후 변화나 불평등의 심화 등 세계적 도전은 방치될 수도 있다. 이때 중국은 주도 국가이지만 그렇다고 세계를 완전히 주도하진 못할 것이다. 이른바 ‘표류하는 세계’ 시나리오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면서 교역관계를 이어가지만 정치적 영향력이나 기술 패권, 전략적 우위를 둘러싸곤 현재처럼 치열하게 경쟁을 이어갈 수도 있다.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낮지만 기후문제 등 장기적인 과제는 해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미국과 중국은 두 갈래로 갈라진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번영하면서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다. 이른바 ‘경쟁적 공존’ 시나리오다.
유력한 세 시나리오 외에도 현재의 추정과 다소 어긋나는, 보다 급진적인 시나리오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즉 세계화가 완전히 무너지고 위협으로부터 각각 자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경제 및 안보 블록을 형성하는 ‘분열된 세계’ 시나리오와 황폐화된 환경 위기에 대응해 지구적으로 혁명적 변화가 이뤄지는 ‘비극과 이동성’ 시나리오 두 가지가 그것이다.

20년 뒤인 2040년 세계는 어떤 힘이 구조적으로 작용해 어떤 역학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며, 이들 구조적 힘과 새 역학관계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4월 발표한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인 ‘글로벌 트렌드 2040’에서 다섯 개의 시나리오로 20년 뒤인 2040년의 세계를 전망한다. 보고서는 1997년부터 4년마다 한 차례씩 미국 대통령 선거에 맞춰 발간돼 왔는데, 이번에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발표됐다. 부제는 ‘더 다투는 세계’.
보고서는 2040년 세계의 전략적 환경을 형성할 구조적 힘을 먼저 고찰하고 이어서 새롭게 형성될 역학관계를 살펴본 뒤 최종적으로 2040년 세계에 대한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NIC는 2040년 세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구조적 힘으로 인구 통계와 환경, 경제, 기술 네 가지를 꼽는다. 인구 증가의 둔화는 일부 개발도상국에 도움이 되겠지만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겪는 선진국과 동아시아 주요국을 압박할 것이고, 보건과 빈곤 축소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한다.
환경과 기후 변화의 경우 점차 인간과 국가의 안전에 대해 위험을 가중시키고 각국에 힘든 선택을 강요할 것이라며 특히 부담이 균질하지 않아 주요 국간 경쟁과 불안정을 고조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 분야에선 국가부채가 증가하고 무역환경도 더 복잡해지면서 국내외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이 적지 않고, 기술 개발 속도가 크게 빨라지면서 새 갈등과 교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특히 향후 수십년간 혁신을 주도할 기술로 인공지능(AI), 3D 프린트로 상징되는 스마트 소재와 제조, 빠른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공학, 우주 상거래와 경쟁을 촉진하는 새로운 기술 등을 꼽았다.
이에 따라 사회, 국가, 국제 차원에서 새로운 역학관계도 형성될 전망이다. 향후 수년 동안 경제성장이 완만하고 교육과 복지가 약화하면서 기관과 권위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환멸이 심화하고 분열이 커질 수 있고, 국가 차원에선 대중의 요구가 커지는 반면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 사이의 불일치가 커지면서 지속적인 갈등과 정치적 변동 가능성에 직면할 수 있다. 국제적 차원에선 권력의 원천이 다변화하면서 관계와 제도, 규범이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변덕스러운 지정학적 환경 등으로 국가 간 분쟁 위험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보고서는 네 가지 구조적 힘과 세 차원의 새 역학관계를 살펴본 뒤 2040년 세계의 모습을 ‘민주주의 르네상스’, ‘표류하는 세계’, ‘경쟁적 공존’, ‘분열된 세계’, ‘비극과 이동성’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전망한다. 크게 보면 ‘민주주의 르네상스’ 시나리오는 현재의 추세를 감안해 낙관적으로 전망한 것이고, ‘표류하는 세계’ 시나리오의 경우 비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며, ‘경쟁적 공존’ 시나리오는 현재의 추세가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특히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본 ‘표류하는 세계’나 ‘분열된 세계’ 시나리오가 제시하는 2040년 세계 모습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2040년 무렵 세계는 국제적 행동 규칙이 더 이상 지켜지지 않고, 글로벌 협력이 제한적이며, 과학기술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세상이다. 아시아에서 더욱 호전적인 중국의 움직임은 특히 핵심 자원을 놓고 다른 지역 강대국들과 무역 충돌의 위험성을 높인다.”
2040년의 세계가 책이 제시한 시나리오대로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시나리오가 품고 있는 미래의 여러 가능성을 세심하게 살펴보면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과제나 전략, 시사점을 찾아 차분하게 준비하고 대응하는 일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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