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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공조부터 백신 지원까지… 韓·美 정상회담 ‘확장된 동맹’ [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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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24 06:00:00 수정 : 2021-05-24 07: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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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싱가포르 합의 인정… 文 정부 지지
동력 잃은 평화프로세스 힘 받을 듯
공동성명에 ‘대만해협 안정’ 첫 명시
“G2 경쟁 속 韓, 美쪽으로 기울기 시작”

쿼드 언급… 향후 협력 가능성 열어놔
美 ‘中 견제’에 사실상 손 잡아 분석
中 거론 안 해… 선 넘지 않으려 노력

성김 대북특별대표 임명도 긍정적 평가
제재 완화 확답 안해… 北 호응 미지수
한반도 비핵화·北 인권 문제도 공유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미·중 패권다툼이 가열되는 와중에 임기말로 접어든 문재인정부의 대외정책이 기존 친중 기조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문재인정부가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되면서 동력을 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살려내기 위해 바이든 정부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결과다.

한·미는 21일(현지시간) 워싱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문구를 처음으로 명기했고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 대만 문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최우선 국익으로 간주하는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사안으로 올해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포함됐을 때도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관한 문구도 사실상 남중국해 등에서 해양패권을 확립하려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한·미 정상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제기 중인 5G·6G 등 무선통신 네트워크 구조 개발 협력과 오픈 랜(Open-RAN) 기술, 반도체 및 배터리 분야에서도 공급망 재편성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오픈 랜은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 기업 5G 제품의 대응 차원에서 육성하는 기술이다.

이와 함께 공동성명은 2018년 남북 정상의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합의를 기초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추진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담았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합의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시절 이뤄진 것으로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 싱가포르 합의가 북한에 유리하게 이뤄졌다는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 미·중 경쟁 과정에서 한국을 더 가깝게 붙잡아두기 위해 북한 비핵화, 남북관계 개선에서는 한국 측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해석이다. 이로써 문재인정부는 대북정책에서 한결 넓어진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계기에 싱가포르 회담 당시 미국측 실무회담 대표단을 이끌었던 성 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하면서 성의를 보였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은 싱가포르 합의와 판문점선언을 얻은 대신 미국은 공급망 회복력과 항행의 자유, 대만해협 문제까지 공동성명에 기재를 시켰다”며 “미·중 경쟁구도에서 한국이 미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첫 걸음”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제재 완화에 대해서는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우선’이라는 바이든 정부의 기존 입장이 흔들리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저는 결코 그 사람(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안 할지를 판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합의를 기초로 한다는 문구를 기존 합의 ‘계승’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실장은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구체적 방안까지는 합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판문점선언에는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 전환처럼 남북이 주도할 수 있는 사안이 포함돼 있어 이를 계기로 비핵화 협상의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의 반응이 주목되는 지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文 “압박 없었다” 밝혔지만… ‘中 견제’ 4개 품목 모두 담아

 

22일(현지시간)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 미·중 갈등 구도에서 중국이 민감해하는 사안이 다수 들어갔다. 그간 미·중 갈등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온 우리 정부가 미국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다.

 

◆ 한·미 간 처음 언급된 양안 문제

 

한·미가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중국해 항행·상공비행의 자유가 언급된 것, 미국과의 첨단 기술 협력 강화 역시 미국의 중국 견제 구도에 한국이 손을 잡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는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EV) 배터리, 전략·핵심 원료(희토류), 의약품 등 4개 품목이 한·미 협력 품목으로 모두 거론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23일 통화에서 “문재인정부 들어 한·미 간 주요 회의 이후 발표된 내용 중 중국에 가장 강경하고 직설적인 입장”이라고 평가했다.

 

미사일 지침 완전 해제도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지점이다. 외견상으로 한국의 미사일 주권 회복이지만, 미국이 직접 한반도에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고도 동맹인 한국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대중 견제 기구로 받아들여지는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 쿼드(Quad)의 중요성이 언급됐다.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부분에 포함시켜 직접 중국을 겨냥하는 모양새는 피했지만, 처음으로 쿼드가 한·미 정상 간 성명에 거론됐다. 한국이 쿼드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향후 협력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다.

◆ 文 “압박 없었다”, 정의용 “대만해협, 일반적 표현”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 결과가 우리 정부가 중국 견제에 참여한 것이라는 해석을 부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공동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서 중국에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하도록 압박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에는 인식을 함께했다”면서도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압박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전날 jtbc 인터뷰에서 “미국도 우리와 중국 간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한다”며 “대만 관련 표현은 아주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공동성명에는 우리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여럿 눈에 띈다.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달리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고, 대만 관련 언급도 미·일 정상회담보다는 강도가 작다. 홍콩·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도 거론되지 않았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23일 KBS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외교에 많은 노력을 할 때”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공식 대응을 자제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23일 “문 대통령이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동시에 원하는 것을 얻어내면서 미·중 관련 이슈에서 한국의 원칙을 지켰다”고 평가했다. 다만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다즈강 동북아연구소장은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이 명기된 것에 대해 “한국 국익과 동북아 현실에 부합하지 않아 후유증이 따를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환구망은 ‘내정간섭’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반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도중 대북특별대표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미, 北에 대화 손짓… 유인책 없어 한계

 

21일(현지시간)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싱가포르 합의와 판문점 선언이 명시된 것은 한국과 미국 양국이 조 바이든 행정부 초기의 이견을 봉합하고 공조 대열을 형성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미 양국 정상이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환경 조성에 노력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미국의 전격적 입장 변화는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며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남북 관계 진전을 촉진해 북·미 대화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진전하면서 긴장을 줄이기 위한 실용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으로 관여할 의지를 공유한다”며 “미국은 우리의 대북 전략과 접근을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달 초 대북정책 검토를 마무리하면서 혼용하던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를 확인했다.

2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미사일. 뉴스1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우리 정부의 대미 외교에서 최우선 순위는 대북정책의 연속성 확보였다. 공동성명에 싱가포르 합의와 판문점 선언이 포함된 것은 이 점에서 우리 정부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2일 jtbc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추진하기 위한 동력이 확보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성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주한미국대사와 6자회담 수석대표 등을 지낸 대표적인 ‘북한통’으로, 북한에도 친숙한 인사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성김 대표의 임명 발표도 기자회견 직전에 알려준 깜짝선물이었다”고 말했다.

 

북한 입장을 다수 반영해 만들어진 싱가포르 합의의 불씨를 살린 공동성명 차원에서 인정된 것은 북·미 대화 재개에 긍정적 신호지만, 조기에 북한이 대화에 나설지는 불확실하다.

 

이번 공동성명엔 북한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인권 관련 언급이 들어갔다. 인권 문제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화하지는 않고 인도적 문제에 한정시켜 간략하게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연설을 위해 단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미 양국의 인식이 일치한다는 상징적 수사를 취하면서도 북한에 대해 어떠한 양보도 구체화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완전 이행을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것은 미국이 대북접근에 마지노선을 그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2019년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의 대화 조건으로 체제 안전 보장, 연합훈련 중단 등을 의미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거론하고 있는데, 이번 공동성명에서 이 점에 대한 구체화는 없다. 대화 재개 방식도 논의되지 않았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도형·홍주형·이진경 기자, 워싱턴=공동취재단,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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