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코로나로 부익부빈익빈 심화
중산층 기반 ‘미들아웃 경제' 추진
‘포퓰리즘 덫' 피할 수 있을지 의문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만났다. 이번 회담 전후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두 지도자의 경제관은 닮은꼴이다. 특히 문재인정부가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모델을 바이든 정부가 답습하려 한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바이든 대통령보다 줄잡아 4년 먼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했던 문 대통령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코로나19 팬데믹 탓으로 돌렸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를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필요한 핵심 이유로 꼽는다.

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적어도 고용안전망과 사회안전망이 강화되고 분배지표가 개선되는 등 긍정적 성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코로나 위기가 흐름을 역류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코로나가 할퀴고 드러낸 상처가 매우 깊다”며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코로나 격차 속에서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였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달 24일 첫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미들아웃 경제’(middle-out economics) 이론을 제시했다. 이는 한마디로 소수의 부자가 아니라 다수의 중산층 소득이 늘어나도록 유도해 경제발전을 지속하려는 것이다. ‘낙수효과’가 실패했으니 ‘분수효과’를 꾀해야 한다는 소득주도성장론과 궤를 같이한다.
낙수효과는 고소득층 소득이 늘어나면 경제가 성장해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의미다. 이런 낙수효과는 소득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를 야기했다는 게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의 주장이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재원 삼아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와 복지 증대를 추구하는 분수효과를 노리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경제분야 연설에서 신자유주의 성향의 낙수효과론을 정면 비판했다. 낙수효과론에 근거한 미국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부자와 기업만 배를 불렸다고 질타했다. 대신 그는 ‘일자리와 인프라 구축안’과 ‘미국 가족계획안’을 제시했다. 이들 정책의 핵심은 중산층과 저소득층 소득이 늘어나도록 경제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밑바닥 또는 중간에 기반을 두고 새로 정립돼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경제 전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바이든이 지난 40년간 유지돼 온 미국의 경제 패러다임을 깨려 한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미들아웃 경제’는 다수의 소득 증대를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한다. 다수 국민의 소득이 늘어나면 중산층이 탄탄해지고, 이들의 적극적 소비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득불균형이 해소돼 민주주의 체제가 더욱 공고해진다는 게 바이든 정부의 주장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웠던 문 대통령처럼 바이든 대통령도 최저임금 인상에 공들이고 있다. 그는 현재 연방정부 차원에서 설정한 시급 7.5달러(약 8500원)를 15달러로 2배로 올리려 한다.
문재인정부는 지금 경제정책 실패로 고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가 한국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기색은 전혀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부익부빈익빈의 경제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미국인들은 ‘바이드노믹스’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이 여론 조사기관 입소스를 통해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에서 제시한 경제정책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인의 65%가 부자 증세를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방안에 찬성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인의 생각이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코로나19 이전에 추진됐기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닐 터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팬데믹을 등에 업고 문 대통령과 유사한 경제정책 실험에 나서고 있지만 그의 도박이 성공할지 알 수 없다. 한국이나 미국이 정부의 과도한 퍼주기식 재정정책으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졌던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