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정계 거물 미치 매코널 공화 상원의원
“아시아계 존재감 약해… 목소리 더 크게 내야”

미국 연방정부에서 장관만 12년을 지낸 중국계 미국인이 “나도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혐오 발언과 차별의 표적이 됐다”고 토로했다. 2001년 미국 역사상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 장관직에 오른 일레인 차오(68)가 주인공이다. 그는 현재 미 정가의 최고 실세 중 한 명인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부인이기도 하다.
차오는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2001∼2009)에서 노동부 장관으로 8년, 역시 공화당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2017∼2021)에서 교통부 장관으로 4년을 일했다. 미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장수’ 장관 기록에 해당한다.
19일 미 일간지 USA투데이에 따르면 차오는 지난 14일 이 신문에 ‘아시아계 미국인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중국으로 돌아가라 같은 모욕과 망언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긴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는 요즘도 평화로운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이메일 계정을 확인하다가 ‘중국 여자야, 너희 중국으로 돌아가라(Go back to China, China woman)’이란 제목의 메일을 보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는 얘기로 운을 뗐다. 중국 본토가 공산화한 뒤인 1953년 대만에서 태어난 차오는 8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고 19살 때 시민권을 취득했다.
미국에서 산지 벌써 6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시아계를 겨냥한 각종 혐오 표현과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이 놀랍다면서 차오는 그래도 자신은 사정이 좀 더 나은 편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집단구타를 비롯한 가혹행위를 당했고 심지어 살해된 이도 있기 때문이다. 라오는 “단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사람들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공포에 떨고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일이 21세기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사람들’이란 1620년 잉글랜드에서 신대륙 미국으로 옮긴 최초의 이민자들로, 미국 사회에서 주류로 통하는 영국계 백인을 말한다.
차오는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의 다섯 가족은 1960년대에 뉴욕 빈민가의 침실이 하나뿐인 아파트에 살았다. 차오는 “부모님은 그래도 미국이 ‘기회의 땅’이란 점을 확신하셨다”며 “다른 수백만명의 미국인도 비슷한 희망을 갖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AAPI)은 미국 전체 인구의 7%를 차지하며 약 1조원대의 구매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일부로 확고히 자리매김 했으나 정치적 영향력이나 사회를 향한 발언권은 기대 이하라는 게 차오의 분석이다. 마침 미국에서 5월은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이 미국의 역사에 기여한 바를 기리는 ‘AAPI 문화유산의 달’이다. 차오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존재감을 높이고 좀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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