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주민들 ‘지장물 조사’ 보이콧사태… 대토 보상도 진통 가중 [심층기획]

, 세계뉴스룸

입력 : 2021-05-17 23:00:00 수정 : 2021-05-17 23:58:5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3기 신도시 토지보상 난맥상

“400년 이상된 집성촌 떠나가는데
보상금으로 인근 전세 얻기도 빠듯”
하남 교산 등 시행사·주민들 마찰음
투기 의혹 불거지면서 현장조사 중단
지장물·대토보상 주민들 계속 거부

주변 땅값 급등… 새 농지 구입 ‘물거품’
11월 사전청약은 사실상 물 건너가
대행업체선 주민 상대 불법 전매도
농민들 “물려받은 땅 99%가 양도세
보상가 차액, 세금으로 착취당한 꼴”

강모(65·여)씨는 40여년 전 경기도 한 변두리 농촌으로 시집을 왔다. 버스도 제대로 다니지 않던 이곳에서 집성촌을 이뤄 살던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키워 시집·장가까지 보냈다. 남편의 14대 선조부터 400년 이상 머물러 온 마을에 ‘격변’이 닥친 건 2018년 12월이었다. 마을이 3기 신도시 개발지구에 편입됐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처음에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적당히 땅값을 보상받아 새 집과 인근 농지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이내 실망감을 넘어 분노로 돌변했다. 하남 교산지구 항동에 거주 중인 강씨는 “덥석 보상금을 받고 보니 주변 시세에도 한참 뒤져 인근 전셋집을 얻기도 빠듯하다”며 “농사짓던 이웃들도 이미 천정부지로 오른 땅값 탓에 하남시에서 새 땅을 구할 수 없어 강제로 내쫓기게 됐다”고 푸념했다.

 

◆400년 된 집성촌도 이주,“주변 전셋집이라도 얻었으면”

 

올 하반기 사전청약을 앞둔 경기 하남 교산지구와 인천 계양지구의 3기 신도시 예정지에서 토지 등 보상을 둘러싸고 진통이 가중되고 있다.

 

17일 3기 신도시 주민대책위원회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따르면 처음으로 보상이 시작된 교산지구와 계양지구의 보상률은 지난달 30일 기준 각각 62.4%, 57.9%에 이른다. 남양주 왕숙, 고양 창릉, 부천 대장지구의 보상이 올 4분기 예정된 가운데 외형상으로만 보면 신도시 개발은 상당히 진척된 모양새다. 외지인 지주들이 앞다퉈 보상을 신청했기 때문이란 추정에도 불구하고, 일부 주민의 요구처럼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규명될 때까지 신도시 개발을 미루거나 지정을 취소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3기 신도시 예정지 곳곳에선 잡음과 난맥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남 교산지구는 첨예한 대립을 빚는 곳 중 하나다. 이곳에선 지장물과 대토(代土) 보상을 놓고 LH 등 사업시행자와 주민 간 대립이 이어지면서, 지장물보상의 경우 3개월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교산지구 보상 대상은 1만400여필지, 4100여명이다. 현금보상 외에 지장물보상·대토보상이 이뤄지는데 창고와 비닐하우스, 건물, 비수목 등 지장물보상의 경우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이 터지면서 주민들이 현장 조사를 막아 사실상 중단됐다. 공교롭게도 당초 지난 3월2일 예정됐던 첫 지장물 조사는 당일 땅 투기 의혹이 폭로되면서 유야무야됐다.

 

건축물대장을 기준으로 이곳의 지장물은 4500건이 넘는다. 하지만 LH에 접수된 희망자는 400여명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대부분 임차인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산지구의 한 주민은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과 관련해 교산지구에서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수사가 종료될 때까지 지장물 조사에 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금 외에 다른 토지로 보상하는 대토보상은 주민들이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하남시도 이의를 제기해 LH에 추가 공급을 요구했지만, LH는 다른 사업지구와의 형평성 등을 들어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앞서 LH는 근린생활 11필지(1만318㎡), 주상복합 5필지(5만9393㎡), 자족시설 67필지(45만5318㎡) 등 93개 필지 82만494㎡를 대상으로 대토보상에 나섰지만 근린생활과 주상복합 등 일부 필지에 신청자가 집중돼 탈락자가 다수 나왔다.

◆교산지구 지장물보상 중단… 11월 사전청약은 어려울 듯

 

일각에선 주민 반발의 근본 원인을 집단이주대책과 미흡한 보상안에서 찾는다. 이강봉 하남 교산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LH가 임시 거주지 마련을 위한 이주대책에 구두로 합의한 뒤 문서로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며 “실질적 보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올 11월 (우리가 사는 땅을 대상으로) 신도시 사전청약을 받는 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토교통부에서도 주민대책위와 협의하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LH가 투명하지 못한 개발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교산지구 주민대책위에는 원주민 등 토지주 2000여명이 참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LH 측은 연말 예정된 사전청약을 고려해 현금보상, 지장물보상, 대토보상 등에 대한 협의를 이달까지는 마무리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에 대한 수용 재결 절차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주민들이 계속 보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사전청약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복잡한 틈을 비집고 대토보상 개발대행업체들이 주민을 상대로 불법 전매를 유도한 사례도 나타났다. 대토보상 컨설팅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70% 현금 선지급을 내세워 원주민들의 보상권을 챙겨간 것이다. 하남 교산지구에서 20여곳, 인천 계양지구에서는 5곳 정도가 성행했는데, 일부 업체는 ‘대토보상권을 신탁하면 LH의 현금보상보다 더 높은 수익금을 주겠다’는 식으로 영업해왔다.

 

교산지구의 한 주민은 “지난 3월 말 대토업체와 계약한 토지주의 행위를 불법화한 이른바 ‘진선미법’(부동산투자회사법)이 국회에서 의결되기 직전까지 계약서도 없이 일부 현금만 지급한 채 대토권을 앗아가는 불법·편법 행위가 판을 쳤다”고 전했다. 이태범 하남 교산지구 고향지키기 주민대책위 사무국장도 “경찰이나 국토교통부, LH 모두 (법안 통과 전까지) 직접 나서 단속할 수 없었다”면서 “지금도 대토업체들이 선지급하겠다며 버티고 있다”고 설명했다.

 

◆30여년 전 물려받은 농지, 시세의 99.9%가 양도세 대상

 

이런 난맥상은 국토부가 지난해 7월 대토보상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면서 더 성행했다. 국토부는 5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이 한꺼번에 수도권 일대에 풀릴 것에 대비해 대토보상에 적극 나섰다. 지난 1월25일 대토보상 신청을 시작한 인천 계양지구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계양지구의 한 주민은 “올해 초까지 LH 측에 토지보상과 대토보상에 관해 물어도 정확한 답변이 없어 직접 공부하기까지 했다”며 전했다.

신도시 예정 주민들의 불만은 더 쌓이고 있다. 당현증 인천 계양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정부와 LH가 말로는 ‘정당한 보상’과 ‘원주민의 재정착’, ‘직주형 근접도시 건설’이라고 외치지만 고도의 기술자에게 원주민이 걸려든 함정의 감언이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당 위원장은 “3기 신도시 사업을 유치했다고 현수막을 내걸던 정치인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고 농사로 평생을 보낸 농민들은 이유도 모른 채 땅을 강탈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1975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격을 기준으로 현재 시세의 99.9%가 양도세 부과 대상이 됐다”며 “보상가의 차액을 세금으로 다시 착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상 지주가 1200가구 안팎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계양지구에선 지장물이 적어 주민대책위가 실질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는 상태다.

 

한편 경기 과천시에선 LH 사태의 여진으로 시와 시의회가 대립하며 7100가구 규모의 3기 신도시 조성 일정이 표류하고 있다. 과천시가 과천 도시공사의 1200억원 출자계획동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했지만 수개월째 계류된 탓이다. 일부 시의원들은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인해 신도시 개발에 빨간불이 켜졌다”며 “과천시가 3기 신도시 지구 개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사업 타당성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개진 중이다. 보상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려면 과천시가 보상비 1200억원을 도시공사에 출자해야 한다. 과천시 관계자는 “외부 요인 때문에 출자 동의를 받지 못하게 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사진=뉴시스

◆“투기 의혹·공급정책 분리해서 추진해야”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처음 제기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이강훈 변호사는 17일 “공공주택 사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의 분양 방식은 투기를 부르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투기 의혹과 공급 정책은 분리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3기 신도시 취소 등 초강수보다는 ‘공공택지에 공공주택 공급’을 원칙으로 개발이익이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는 장기공공임대주택과 공공분양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가 3기 신도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당이득 가중처벌과 투기이익 환수, 투기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입법을 주장했다. 그는 “공공택지 지정 이전에 (투기의) 전조 증상들이 보인다”면서 “손바뀜이 일어나기 전 농지 투기를 막기 위해 프랑스식 토지보상법 도입을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농사 등을 지어온 토지주들에게는 금전적 보상 외에 정신적 위자료와 같은 생활 보상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변호사 조언이다.

 

하지만 LH 임직원 투기 의혹 사태로 3기 신도시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문제가 되는 지역은 한 템포 늦춰야 할 필요가 있다”며 “토지가 수용되는 지역은 원주민 의견도 듣고, 정부가 사업 추진 계획을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 교수는 “(보상 완료 전의) 사전청약은 위헌이고, 땅 소유권도 없는 상태에서 예약 분양한다는 건 국가가 법을 어기는 것”이라며 “토지수용법을 바꿔 소유기간에 따른 차등보상으로 신뢰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3기 신도시 주민들이 신도시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남 교산지구 고향지키기 주민대책위 제공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도 “신도시 지정지구의 보상기준 재설정 등은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 수석전문위원은 “현실적으로 LH의 신도시 개발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밖에는 대안이 없어 보인다”며 “단순 투기를 배제하기 위해 공람일 2∼3년 전부터 토지 구매에 제한을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하남·과천=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