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들에게 낯선 ‘블랙펌’(악덕 로펌·법률사무소)이란 용어는 변호사업계에서 ‘질 낮은 로펌’을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으로 주말 출근과 야근을 밥 먹듯이 시키거나, 인격모독성 발언 등을 하는 곳이 블랙펌으로 분류된다. 보통 수습 변호사들이 블랙펌의 손아귀에 있지만, 수습을 갓 뗀 청년 변호사들에게도 블랙펌은 존재한다. ‘구성원 변호사’ 직책을 들이밀며 아무 것도 모르는 청년 변호사에게 무한책임을 지게 하거나, 지방 재판만 끊임없이 보내는 로펌 등이 대표적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블랙펌은 수습 변호사가 아닌 일반 청년 변호사들에게도 해당된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습을 뗀 뒤에도 블랙펌을 조심하라는 얘기를 우리끼리 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법무법인 구성원 등기를 해달라는 요청이다. 법무법인은 최소 3명의 변호사가 구성원으로 등기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업계를 잘 모르는 청년 변호사들에게 등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근무 조건과 월급 등을 나쁘지 않게 제시하다보니 ‘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구성원 등기를 한다는 건, 법무법인의 채무와 대표변호사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구성원 등기 전에 발생한 법인 채무에 대해서도 연대책임을 지고, 법무법인에서 탈퇴하더라도 2년간은 동일한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한마디로 ‘족쇄’를 차는 셈이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예전에 면접을 보러 갔더니 ‘같이 일하면 좋겠다’며 전혀 문제가 없으니 명의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 있다”며 “근무조건은 좋을 수 있지만 이는 본심을 숨기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청년 변호사를 꼬시려고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갓 취업한 청년 변호사에게 지방 재판을 떠맡기는 블랙펌도 있다. 서면은 변호사가 아닌 사무장이 쓰고, 변호사는 지방 재판만 돌아다니는 식이다. 일정이 바빠 변호사가 서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다보니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한 주에 3~4번 지방 재판을 보내는 로펌도 있다고 들었다”며 “선배 변호사나 대표 변호사가 가르침을 주는 느낌도 아니고, 소모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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