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없는 논쟁… 사회 분열 가속
서로 다름 인정하고 보완하는
‘성평등 역할주의’ 교육 필요
일베, 남성연대로부터 시작된 여성비하가 이후 여성들의 반격으로 남성과 여성 간의 본격적인 갈등으로 발전한 지 10여년이 되어간다. 그간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최근 상황은 매우 심각한 것 같다. 신조어나 광고 등 상대 성(性)을 비난하려 한 의도가 명백하지 않거나 그런 의도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계속 오해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오또케 오또케’ ‘오조오억’, ‘허버허버’ 용어로 인한 여혐, 남혐 논쟁이 그것이다. GS25의 이벤트 홍보 포스터, GS리테일 50주년 기념주화 이미지, 다이소 홍보물 등 손가락 모양 하나로 상대 성별을 혐오한다는 논쟁이 빚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남녀 갈등이나 혐오 현상은 존재해 왔다. 여성혐오를 뜻하는 미소지니(misogyny)라는 단어는 1620년 잉글랜드에서 익명의 작가에 의해 출간된 ‘여성혐오자 스웻남(Swetnam the Woman-Hater)’이라는 극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이 연극은 여성혐오 성향의 작가 조셉 스웻남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미소지노스(Misogynos)라는 가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비판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까지는 거의 쓰이지 않다가 1974년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의 저서 ‘여성혐오(Woman Hating)’가 출간되면서 제2물결 페미니즘(second-wave feminism)의 언어가 되었다. 여성을 향한 증오나 혐오뿐만 아니라 폭력을 통해 여성을 조종하려 하고 굴복하지 않는 여성을 처벌하는 행위까지 폭넓게 포함하는 단어로 정의된다.

남성혐오(misandry)라는 용어는 페미니즘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고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였다. 1890년대에 미국과 영국 신문에서는 신여성을 남성혐오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구글 아카이브에 따르면 1990년대 초기, 인터넷상에서도 남성혐오는 페미니즘과 동의어로 자주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몇몇 게시판에서 “페미니스트들은 남성혐오자다”라는 제목의 토론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기부터 남성혐오라는 용어가 더 확산되어 가면서 다양한 남성인권론자 웹사이트들이 생겨나고 남성혐오적 여성운동 때문에 남성이 억압받고 차별받는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 남성을 조롱하는 유머 기사들이 등장하게 된다. 2014년에는 “나는 남자의 눈물을 마신다(I drink male tears)”에서 비롯된 백인남성의 눈물(White male tears)은 일종의 슬로건이 되어 문구가 박힌 머그잔, 티셔츠, 가방 등이 제작되어 유통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남혐 및 여혐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든지, 누가 더 피해가 크다든지와 같은 서로 간의 비난과 조롱이 과연 생산적일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 물론 상대 성이 인식하지 못했던 피해와 고충을 알리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논쟁은 결국 끝이 없는 전쟁인 것 같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고, 사회분열을 더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일부 청년들에게서 시작되어 이제 기성세대까지 동참하는 분위기다. 사실 이런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부이기에 개인차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한 뇌 영상 연구에서 성역할 관련한 신념과 뇌 부위 간 관련성이 밝혀졌다. 이 연구에서는 개인이 지닌 ‘성역할 평등주의(Sex-role equalism; SRE) 성향’을 측정하고 뇌를 촬영하였다. 그 결과 높은 SRE를 보인 사람은 뇌에서 후대상피질 영역의 회백질 밀도가 낮고 오른쪽 편도체에서 높은 회백질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성역할(sex-role)은 성에 맞는 행동, 사회적 기대를 가리키며 남성과 여성에게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규범이라 할 수 있다. SRE는 성역할의 평등에 대한 믿음 즉 성별이 개인의 권리, 능력, 의무, 기회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다. 높은 SRE는 사회의 평등을 촉진하는 특성인 한편 낮은 SRE는 성역할에 대한 보수적 관념을 반영한다. 그런데 낮은 SRE와 관련성 있는 뇌의 편도체는 적대감이나 공격성이나 폭력에 영향을 미치는 부위이다. 편도체에 있는 회백질은 여러 부정적인 감정 즉 우울, 불안, 스트레스, 신경증적 성질과도 연관이 있다. 또한 편도체의 구조는 사회적 편견, 고정관념 등 사회적 판단뿐 아니라 정치적 보수성향과도 관련이 있었고 낮은 SRE와 관련이 있다. 결국 ‘성역할 평등주의 성향’이 낮은 사람의 경우 적대감과 폭력성도 함께 높을 가능성이 있기에 다른 집단에 대해 비난과 공격이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극단적인 혐오까지 가지게 된다.
지구는 남자와 여자 두 종족으로 구성된다. 남녀는 외모뿐 아니라 능력이나 행동에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더 강한 능력이나 각자가 더 잘하는 영역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성차는 개인차만큼 중요하기에 서로 인정해주고 보완해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성역할 평등주의’ 의식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캠페인이나 지시적 교육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가정과 사회에서 스스로 습득되어야 한다. 남 탓하기 전에 스스로 얼마나 성역할에서 평등한 사고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이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에는 이런 소모적 전쟁이 종식될 수 있을 것 같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