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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춤을 찾아 … 삼십대 무용수의 아름다운 도전

입력 : 2021-05-09 23:00:00 수정 : 2021-05-10 09: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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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떠나 하얼빈 수석무용수로 가는 발레리나 최지원
“예중·고 시절부터 유니버설과 22년 인연…은퇴를 조금씩 생각하는 나이에 이적
같이 발레하는 남편의 지지 큰 힘… 하얼빈발레단서 안 해본 것 실컷 해 볼 것”

도전과 안주(安住)의 갈림길에서 발레리나 최지원은 도전을 선택했다. 그렇게 정들었던 유니버설발레단(UBC)을 떠나 중국 하얼빈발레단에서 새로운 무대를 연다. 2009년 UBC에 입단한 지 12년 만이다. UBC와 한울타리에 있는 모교 선화 예중·고 시절까지 합하면 무용수 인생의 전부이자 서른넷 삶의 절반 이상을 땀 흘렸던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 일대를 20여년 만에 벗어나는 대모험이다.

 

“대학(이화여대 무용학과) 다닐 때도 계속 이곳에 와서 수업을 받곤 했으니 이곳과 인연이 22년쯤 되려나요. 무용수의 삶이 길지가 않잖아요. 그만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새로운 곳에서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이직이 쉽지 않지만 삼십 대 무용수가 정든 발레단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발단은 오랫동안 UBC 무대에 파트너로 함께 섰던 중국인 발레리노 마밍 제안이었다. 2년 전 여름 무렵 신설 하얼빈발레단으로 스카우트된 마밍이 “한번 생각해보라”고 이적을 제안했다. “그때만 해도 전혀 제 머릿속에 없던 선택지였는데 ‘갈라’ 공연에라도 꼭 같이 서달라고 해서 그해 연말 휴가 때 창단 공연 형식으로 열린 갈라 공연에 참여했어요. 하얼빈발레단에서도 저를 좋게 봐서 계속 제안을 했고 저도 느낌이 좋아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죠.”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유행하면서 일단 고민을 접었다. 그런데 중국 상황이 호전하면서 “아직 우리랑 같이하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이 다시 왔고 이번엔 바로 수락했다. “생각은 뜨뜻미지근하게 오래 했는데 결정은 한순간에 했어요. 여기선 너무 편하고, 나와 함께 춤춘 사람들, 나를 아는 관객들 앞에서 은퇴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말 많이 고민하니 이번 기회를 피하면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유니버설발레단을 12년 만에 떠나서 중국 하얼빈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새출발하는 발레리나 최지원.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최지원은 키(174㎝)가 큰 발레리나다. 키 큰 발레리나에겐 시원한 신체 비율에서 나오는 큰 동작으로 표현 영역이 넓어지고 풍부해지는 장점이 있지만 주역으로서는 이를 받쳐줄 발레리노가 있어야만 한다는 제약이 생긴다. 188㎝였던 마밍같은 키 큰 파트너가 최지원에게는 필요했다. “어렸을 때는 큰 키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발레단에서 (경력이 쌓여) ‘파드되(이인무)’를 시작할 때 되니 ‘쉽지 않은 길이겠구나’ 했죠. 파트너 선택 폭이 좁아지고 그러다 보면 제가 출수 있는 춤도 한정된다는 걸 깨달았죠.”

 

무용수로서 정점을 향해가는 중인 만큼 더 많은 가능성을 줄 수 있는 파트너와 무대를 찾아가는 최지원의 어려운 결정을 사정을 아는 이들은 모두 지지했다. 같은 무용수의 길을 걷고 있는 남편 이영도 발레리노는 “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다하고 돌아오라”고 격려했다. “ ‘너랑 나랑 평생 살 건데 잠깐 떨어져 있는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고민 없이 말해주는 데 정말 고마웠죠. 무용수로서 뭔가 더 하고 싶어하는 제 갈증을 이해하니깐 전혀 망설이지 않고 ‘가라’고 해줬어요.”

 

문훈숙 UBC단장도 “단장으로서는 중요한 무용수가 떠나면 아쉽고 안타까워야 하는데 같은 무용수로서는 네 마음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보다 ‘잘됐다’는 마음이 크다”며 도전을 격려해준 게 최지원에게는 큰 힘이 됐다. UBC는 필요하면 국내 활동 지원 등 최지원과 인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앞으로 활동할 하얼빈발레단은 중국 동북지역 중심으로 급성장 중인 하얼빈이 전력 지원하는 예술단체. 단원들엔 호텔이 숙소로 제공될 정도다. 신생발레단임에도 활발하게 큰돈이 들어가는 창작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를 새로 창작 중인 캐나다 출신 상임안무가 피터 콴츠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흥행은 (하얼빈발레단 창작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북미 발레단처럼 표 파는데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호언한 바 있다. 이처럼 야심 찬 신생발레단에서 최지원은 수석무용수 4인 중 한 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일상 훈련과 작품 연습, 리허설, 공연 등 모든 활동에서 최고의 자세와 태도로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보다 뭔가를 더 해야 한다는 건 없어요. 지금처럼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해야죠.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니 수석은 자기 일에 큰 책임감을 갖는 게 남다르다고 생각해요. 테크닉이나 동장이 물론 뛰어난 것도 수석의 면모지만 클래스나 리허설, 공연에 임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수석 언니가 춤출 때 제가 작은 역할이라도 더 잘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모여서 공연 무대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거든요.”

 

최지원의 UBC 마지막 무대는 지난달 17일 경남 진주 ‘돈키호테’ 공연이었다. 이후 발레단에선 클래스만 참여하며 이번 주로 다가온 출국을 준비 중이다. “지방 공연이라 전날 밤에 상이 언니(한상이 발레리나)랑 방을 함께 쓰는데 욕실에 문 닫고 들어가서 혼자 엄청 울었어요. 갑자기 눈물이 나서…. 정작 마지막 공연은 진짜 재미있게 했어요. 나중에 인사하는데 후배들이 많이 울었죠.”

 

UBC에서 올랐던 숱한 무대 모두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직전 연말에 열렸던 ‘호두까기 인형’이 최지원에게 지금은 가장 특별하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 중 팔에 금이 여럿 가는 상처를 입었다. 매년 공연하는 작품인데도 유독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들 걱정하는데도 힘겹게 재활과 연습을 병행해서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팔이 다 펴지지도 구부러지지도 않는 상태였어요. 다들 ‘할 수 있겠나’라고 걱정하고 저도 확신 못 하면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몸을 이끌어갔는데 첫 공연 무사히 끝내고 정말 안도했죠. 지나고 보니 그게 제 마지막 ‘호두까기 인형’이었죠.”

 

그 이후로 코로나19가 공연계를 뒤덮으면서 무대를 향한 갈증은 더 커졌다. “지난 한 해는 ‘언제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예전 무대를 곱씹어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 몰라도 무대에 서면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과 함께요. 뭔가 최선의 상태가 아닌 무대, 다 뿜어내지 못하고 왔던 공연들이 생각나면서 ‘이 느낌을 잘 기억했다가 다음 무대에 서면 후회를 남기지 않고 다 발산해야지. 엄청 잘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하얼빈 도착 후 3주 격리 기간을 두고 하얼빈발레단에 합류하게 되는 최지원의 새 무대는 7월에 열릴 전망이다. “한 번도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언어를 빨리 익히고 현지 문화를 배우고 친숙해지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UBC에서 클래식 발레나 드라마·모던발레는 많이 했지만 네오 클래식 발레는 못 해봤는데 하얼빈발레단은 네오클래식을 많이 해서 기대가 됩니다.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서 가는 거니깐요.”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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