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우리춤, 한국전통무용이 나설 차례입니다. K-팝과 K-드라마, K-뷰티, 한식, 한국어 배우기 등 한류 열풍이 지구촌 곳곳으로 번져 가는데, 찬란했던 우리 문화의 대표적 유산인 전통무용 또한 이에 발맞춰 본격적인 세계화를 진행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원서영)
“어릴 때만 해도 마을잔치가 열리면 할머니들이 얼씨구 장단에 맞춰 두 팔을 접었다 펴며 전통 춤사위를 보여주곤 했는데, 지금은 우리의 몸짓을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중화로 우리춤을 되찾아야 해요.”(정주이)
우리춤의 글로벌화에 뜻을 함께한 중견의 춤꾼 원서영과 정주이가 ‘㈜티디아이(The Dance Is·더댄스이즈)’를 공동설립한 뒤 국경 너머 세계인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보급형 커리큘럼을 완성해 내놓았다. 인종, 지역, 문화 차이에 구애받지 않을 공감형 한국 정서에 홈트레이닝을 접목한 교육·이수과정의 한국전통무용 브랜드 ‘한춤’이 그것이다.
국내에서 우리의 전통춤을 온라인콘텐츠로 개설해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을 대상으로 외국어서비스 수강 교육플랫폼을 만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검색창에 ‘한춤’을 치면 ‘한국전통무용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란 설명이 함께 뜬다.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는 등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라서인지 해외 무용 관계자들이 종종 물었어요. 한국인들은 누구나 댄스를 즐기냐고, 그런데 브라질 삼바처럼 한국 전통춤도 유행하냐고,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그래서 영어로 된 글로벌 사이트부터 먼저 열었어요.”

원 대표는 고고하지만 폐쇄적인 우리춤을 세계에 과감히 개방하고 싶었단다.
“한국전통무용은 세계의 모든 사람이 즐길 권리가 있는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도 예외 없이. 우리만 쥐고 있지 말고 수출해 보자는, 근데 한류가 될까. 그걸 제가 이루어내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춤은 배우기가 결코 간단치 않다.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데 정작 추는 사람은 어렵고 힘들어한다. 한 번이라도 배워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고통이 크다. 자세를 몹시 중시하기 때문이다. 바른 자세에서 곱고 우아한 선이 나온다.
그래서 지미집 포함 카메라를 5대나 동원해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발디딤과 손동작, 시선, 호흡하는 법 등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하고 세세하게 편집했다. 옆에 서서 일일이 입박자를 넣어주고 목소리 고운 성우의 내레이션을 입혔다.
“시대가 바뀌고 교육형태도 달라져서 학원이나 문화센터 강좌를 넘어 이제는 전문성을 온라인에 풀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어렵지 않게 그러면서도 디테일하게 설명해 주는 스타일로, 전과정 이수 프로그램을 만들자, ‘쟁이’정신으로 전문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도 기용해 제대로 만들자, 노하우 다 녹여 넣어 마치 스승이 옆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그래서 초보자들이 조금 해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라며 포기하지 않도록….”
수강자가 언제든 반복해서 보고 익힐 수 있는 학습과정을 짜놓았다. 3배속으로 빠르게 볼 수도 있고, 반대로 3배속 느리게 살펴보며 숙달할 수 있다.
해외 교포들의 반응도 좋다.
“로스앤젤레스 등에 자주 찾아가 전수했는데 최근 코로나19 탓에 방문교습이 끊겼어요. 다행히 이를 ‘한춤’ 플랫폼이 이어가고 있죠.”
정 대표는 “이제 교민 1세대에게 배우는 촌스러운 춤이 아니다”고 말한다. “연지곤지 찍고 비녀 꽂은 채 추던 춤이 아니에요. 세련되고 판타스틱한 춤이 되었죠. 1970~80년대 풍에서 벗어나 변화의 첨단을 달리는 우리춤을 가르치고 있어요. 의상만 해도 완전히 바뀌었죠. 무용수들의 몸에 맞는, 거의 명품 수준입니다.”
원·정 두 대표는 춤의 기본이 되는 낱낱의 일정한 동작에 쉬운 우리말을 붙이는 업적도 이뤄냈다.
“쉽게, 되도록 한문에서 벗어나 우리말 이름을 달았어요. 허리감기사위 등 딱 들어보면 어떤 내용인지 느낌이 팍 오도록, 마치 태권도처럼 우리말로 만든 거예요. ‘발차기’ 하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듯 쉽게.”(정주이)
‘숨쉬기’부터 ‘회전잔걸음’ ‘짚고 뛰기’ ‘사선사위’ ‘펼쳐감기사위’ ‘꽃봉우리사위’ ‘양손휘감기사위’ 등 27개 기본동작들에 대한 설명을 사전처럼 정리해 놓았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짧은잔걸음’이란 한 박자 안에 세 걸음 이동하는 동작. 박자의 진행속도와 상관없이 단전에 마신 숨을 유지하며 이동함으로써 바른 자세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허리감기사위‘는 한국무용의 곡선미 유지가 핵심. 번갈아가며 움직이는 손의 방향과 위치는 반드시 배꼽 중앙에서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고 이때 어깨가 좌우로 흔들리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 ‘산들바람사위’는 머리 위로 양손을 뻗고 손목과 손끝을 사용해 시원하고 가볍게 부는 바람처럼 살랑거리는 동작이다.

전 수련과정의 배경음악은 해금 아쟁 등의 선율을 넣어 한국 느낌이 물씬 나도록 지었다. 하지만 시크릿다이어트 과정은 그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BGM 음악을 사용하거나 국악기라도 비트성 연주를 가미하는 융통성을 보였다.
‘한춤’은 모두 다 까먹어서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에겐 ‘재활’ 프로그램의 기능으로도 딱이다.
“한창 춤을 추다가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이 된 경우 시간이 흐르면 마루바닥을 그리워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때 ‘한춤’이 발디딤새부터 다시 상기시켜 주는 구실을 하는 거예요.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춤꾼이었다 할지라도 공백이 길면 발디딤을 잊어버리곤 하니깐요.”(정주이)
중단없이 활동을 펼쳐온 프로 춤꾼들에게도 마루바닥은 그리움의 대상이란다. “마루바닥을 밟을 때 느껴지는 전율이 있는데, 프로들도 그 순간을 늘 갈망합니다. 그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것, ‘나의 춤’이 그리운 겁니다.”(원서영)
학교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기 위해 추는 춤이 아닌, 정말 내 속에서부터 올라와 추게 되는 그런 춤을 타오르듯 추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유년기부터 한국무용을 시작해 학사, 석사, 박사까지 전공한 뒤 줄곧 강단을 오르내리며 살았다. 경희대에서 각각 박사과정(원서영)과 석사과정(정주이)을 밟을 때 선후배로 만나 이제 걷는 뒷모습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만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왔다. 한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다는데, 그것이 오히려 ‘한춤’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류는 신화시대부터 춤을 통해 삶의 무게를 덜어내며 일상을 유지해 왔어요. 고단한 현실을 견뎌내는 힘을 춤에서 캐낸 겁니다. 과거엔 농제, 당제, 시제, 굿 등의 이름으로 마을마다 춤판이 일상처럼 벌어졌는데, 인구나 마을 수로 비교하자면 현재는 턱없이 줄어든 셈이죠.”
원 대표는 앞으로 다양하면서도 세분화된 글로벌 계층에 맞도록 ‘한춤’의 플랫폼이 확장되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등 다국어 서비스를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인들이 ‘한춤’을 통해 진정한 한국의 미를 이해하고 저마다 아름다운 몸을 가꾸길 바란다”는 정 대표는 “현대인이 물질적 풍요를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정신적 안락을 우선시하는데, 경제적 여유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관광 스포츠 같은 양질의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건강한 삶을 원한다”며 “춤추는 것을 종종 일탈행위로 여기지만, 일상의 억압적 질서나 권위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난장을 벌임으로써 공동체 질서를 회복하는 문화적 장치가 바로 춤”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에겐 난장판이 필요하다는 그는 “테마파크를 떠올리면 쉽다”면서 “일상과 단절된 곳에서의 특별한 체험은 오히려 일상의 질서를 꾀하는 역할을 한다”고 조언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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