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한국화 거장 박대성(76) 화백의 전시 작품을 어린이들이 훼손한 일이 뒤늦게 알려졌다. 보호자인 아버지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지난 3월 17일 박 화백의 특별기획전 ‘서화(書畵), 조응(調應)하다’가 열리는 경북 경주 솔거미술관 내부, 초등학교 저학년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 관람객 2명이 들어와 전시관 한가운데 놓인 서예 작품 위에 올라탔다. 먼저 뛰어들어온 아이들을 따라 들어온 아버지는 아이들이 작품 위에서 눕고 기는 모습을 사진찍어주며 즐겼다.
해당 작품은 통일신라 시대 최고 명필로 꼽힌 김생의 글씨를 모필한 것이었다. 가로 폭은 39㎝이지만, 세로 길이가 19.8m에 달하는 대작이다.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돼 액자에 넣어 전시하는 것이 불가능해 벽면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린 형태로 전시되고 있었다. 작품 가격은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미술관 측은 관람객과 작품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안전선을 제거한 상태였다. 다만 작품 옆과 미술관 안내 표지판 등에 작품을 ‘눈으로만 감상해주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작품은 먹으로 쓴 글씨 부분이 번지는 등 훼손됐다. 작품 훼손 사실을 발견한 미술관 측이 뒤늦게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을 확인해 해당 가족을 찾아 항의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작품을 만지면 안 되는지 몰랐던 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술관 측이 이런 과정을 박 화백에게 전했다. 박 화백은 어린이가 그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고 했다고 미술관 측은 전했다. 박대성 화백은 CCTV화면을 입수해 보도한 JTBC에 “우리 애들도 그런다. 애들이 뭘 압니까, 어른이 조심해야지. 그래서 더 이상 얘기할 것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그것도 (작품의) 하나의 역사”라면서 전시 기간 중 당장 복원할 계획이 없다고 방송에 밝혔다. 다만 전시를 마친 뒤 작품을 손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에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훼손한 사건이 벌어진 적 있다.
한 20대 남녀가 유명 그래피티 작가인 존원의 벽화에 붓으로 물감을 칠해 낙서했고, 이를 파악한 전시 주최측이 경찰에 신고를 한 사건이었다. 해당 작품은 5억원 상당의 작품이었다. 당시 20대 남녀는 “앞에 붓이 놓여 있어 해도 되는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당시 전시 주최측은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선처하는 쪽으로 작가와 협의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작가가 복원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혀 약 1000만원이 소요되는 복원을 진행키로 하고 보험사와 관련 절차를 진행했다. 다만 작품을 훼손한 20대남녀가 일부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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