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정부가 새 대북정책 검토 작업을 완료하자 북한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새 대북정책의 초점을 외교에 맞추고 있다며 북한에 대화 재개의 제스처를 보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미 관계가 대화 재개로 이어질지, 아니면 대결로 치달을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이다.

세계일보 자매지인 미국 워싱턴타임스(WT) 재단(회장 마이클 젠킨스)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브리프, 한반도의 위기와 기회에 대한 전문가 평가’를 주제로 개최한 화상 세미나에서는 북·미 대화 재개에 앞서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포함한 도발을 통해 바이든 정부를 시험하려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북핵 문제를 다뤘던 6자회담 미국 측 수석 대표로 활약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현 미 컬럼비아대 교수)의 사회로 6자회담 차석 대표를 지낸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 국가정보국(ODNI) 국가비확산센터 소장, 러시아 출신으로 북한 김일성대학에서 수학한 알렉산더 만수로프 조지타운대 교수, 가이 타일러 워싱턴타임스 국가안보팀장이 주제 발표와 토론에 나섰다. 미국 내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인 이들은 바이든 정부의 새 대북정책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북·미 관계의 진로가 결정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만수로프 교수는 “북한이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 거친 언사로 반발했으나 이러한 수사가 아니라 북한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만수로프 교수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북한이 바이든 정부의 진정성을 시험하려 들 것”이라며 “북한이 이를 위해 인공위성 발사 또는 SLBM 발사 시험을 한 뒤 바이든 정부가 대북 외교를 포기할지 가늠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수로프 교수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그랜드 바겐,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외교에 기회를 주려 하고, 이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실용적으로 접근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만수로프 교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입장에서 보면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코로나19 확산 차단과 국경 폐쇄 등의 상황에서 대미 관계 개선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면서 “특히 미국과 중국 간 첨예한 대결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중국이 북한에 줄 수 없는 것을 미국이 줄 것인지 따져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수로프 교수는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대우를 받으려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바이든 정부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물 건너갈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고, 향후 북한의 대응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 미 대사를 역임한 힐 전 차관보는 “미국의 역대 정부마다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랐다”며 “빌 클린턴 정부는 북·미 양자 대화, 조지 W. 부시 정부는 다자적 접근,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 트럼프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에 초점을 맞췄고 바이든 정부는 대화와 협상에 무게 중심을 둔 단계적 접근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힐 전 차관보는 “바이든 정부는 북핵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을 중시하면서 회담 형식에는 매우 유연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이 바이든 정부의 새 대북정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나 이는 북한의 새로운 모습이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힐 전 차관보는 “내가 북한 고위 관리들과 접촉하면서 미국의 미래 대통령들이 한반도가 위험한 곳이라고 인식하고, 주한 미군을 완전히 철수한다면 북한도 핵무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게 북한의 생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우리가 지난 27년 동안 북한과의 협상에서 실패를 경험했으나 북한은 아직도 미국과의 협상을 포기하지는 않았다”면서 “북한은 체제와 안전 보장을 전제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바이든 정부는 지난 2018년 6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문서로 확인한 싱가포르 합의문을 대북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일러 워싱턴타임스 팀장은 “바이든 정부 100 동안은 한반도에서 새로운 동결로 현상 유지가 이뤄진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타일러 팀장은 “김 위원장이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기간에는 침묵을 지켰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타일러 팀장은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 2.0 또는 2.5’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면서 “문제는 바이든 정부에는 북한 측과 접촉할 막후 채널이 없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타일러 팀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말 미국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할 때 미국이 한국에 재량권을 부여하고, 대북 제재의 예외를 인정해주면 한국이 북한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겠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일러 팀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어느 정도까지는 문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고, 이렇게 되면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을 통한 대북 막후 채널을 가동하는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일러 팀장은 “그렇지만, 북한이 이른 시일 내에 한국을 북·미 막후 대화 채널로 이용하는 방안을 수용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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