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문인 시·사진집 ‘인생예보’
인간승리 손병걸 시인에 감동
작은 실천이 공존 세상 만들어
지난겨울 중앙대 안성캠퍼스에는 방학 내내 공사가 벌어졌다. 5층짜리 예술대학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공사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학생이 5층까지 가려면 누군가 업어주어야 한다. 무거운 휠체어는 다른 사람이 들고 가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고자 건물 완공 40년 만에 비로소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가 우리나라 초·중·고·대학으로 계속 번져가기를 바란다. 장애인에게 계단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올라갈 수 없는 까마득한 절벽이다.
최근에 아주 뜻깊은 책이 한 권 나왔다. 장애문인들을 대상으로 주는 문학상인 구상솟대문학상 30주년 기념 시·사진집인 ‘인생예보’가 그 책이다. 이 땅의 문학상 중 ‘구상솟대문학상’이란 것이 있다. 1991년부터 시작된 이 상의 상금은 50만원이었는데 그 뒤로 몇 번 인상하여 지금은 300만원이 되었다. 구상 시인 살아생전에 사비 2억원을 쾌척했기에 2005년부터 ‘솟대문학상’이 ‘구상솟대문학상’으로 상의 명칭이 바뀌었다. 장애인예술 잡지인 ‘E美지’와 ‘솟대평론’ 발행인 방귀희씨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2006년 수상자 손병걸 시인을 소개하고 있는데 부연 설명해본다.

특수부대에 자원입대한 것은 가난한 시골살림에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대 후 직장도 구하고 결혼도 해 행복하게 살아가던 중 베체트씨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는 장애인 문예지 솟대문학을 통해 등단도 하고 시도 발표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 세계는 보이지는 않지만 광명의 세계였다. 내가 쓴 시가 활자화되고, 누군가가 읽고, 감동했다고 연락을 주는 것이었다. 그의 문학적 성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모 사이버대학교와 대학원까지 졸업하였다. 요즘엔 강연도 다니고 시낭송도 하면서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물질은 때가 되면 떨어지고/ 떨어지는 그 힘으로 우리는 일어난다// 그때도 그랬다, 천수답 소작농으로/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쌀독 탓에/ 수백 미터 갱 속, 아버지의 곡괭이질과/ 시래기 곶감 담은 대야 이고 눈길을 헤치던 어머니의 힘으로/ 우리 남매는 교복을 입고 푸르른 칠판을 바라보며/ 김이 오르는 밥상 앞에 앉아 왔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 ‘낙하의 힘’에서 시인은 부모님의 고생 덕에 우리 남매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가 제법 긴데, “보라, 떨어지는 별들의 힘으로/ 못내 구천을 떠돌던 가난한 영혼들이/ 하늘에 내어준 빈자리에 자리를 잡듯/ 그 순간, 별똥에 소원을 비는 것도/ 다들 낙하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는 감동적인 선언으로 끝난다. 손병걸씨는 구상솟대문학상 수상 이후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등 시집도 여러 권 냈다. 인간승리의 산 표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미국의 헬렌 켈러인데 이 땅에도 신체적 장애를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극복한 사람들이 있었다. 문인 중에는 시인 구자운 서정슬 김옥진, 소설가 김재찬 강종필 김미선 김금철 등이 있다. 고정욱은 아동문학계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2019년에 몇 개 대학 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 교수들이 모여 장애와문학학회라는 학회를 만들었다. 작년 동국대학교에 행해진 제3차 학술세미나의 주제는 ‘장애인 리터러시, 문학적 소통’이었다. 문학 교과서, 웹툰, 애니메이션, 키즈 콘텐츠, 다큐멘터리 영화 등에 나타난 장애인 리터러시(literacy: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였다.
장애인이라고 하여 지나친 동정심을 갖고 대할 필요도 없다. 몸이 불편할 뿐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불편을 함께 짐진다는 생각으로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나서면 좋겠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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