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질없다” 공언하다 입장 선회
‘부동산 투기와 전쟁 쉽게 봤다’ 비판
업계 “2차발표 쉽지 않다” 꾸준히 지적
경찰 수사·실거래가 정밀조사 착수
투기근절 법령 개정 완료 후에 공개
투기 확인 땐 원점 재검토할 수도

“2·4 공급대책은 차질 없이 진행된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입장을 선회한 것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너무 쉽게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29일 신규 공공택지 개발을 통한 공급계획으로 밝힌 26만3000가구 중 절반에 달하는 13만1000가구에 대한 발표를 연기하기로 하면서 2·4대책을 비롯한 정부의 주택공급계획에도 상당 부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국토부가 2·4대책에서 제시했던 신규 택지 조성을 통한 주택 공급 목표는 전국 25만가구다. 이 중 수도권이 18만가구, 지방이 7만가구다. 지난 2월 광명·시흥 신도시를 포함해 10만1000가구 규모를 발표했고, 이날 울산 선바위와 대전 상서 등 지방 중소규모 택지 1만8000가구가 추가로 공개됐지만, 여전히 정부 계획 중 13만1000가구가 남아있는 상태다.
광명·시흥 신도시 발표 이후 일주일도 되지 않은 3월 초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미 업계에서는 신규 택지 발표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 사태로 LH는 물론,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국토부 수장의 낙마와 여권의 재보선 참패라는 결과까지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2·4대책 등 공급확대 방침을 강행하면서 시장에서는 경기 김포 고촌, 하남 감북, 고양 화전 등이 유력 후보지로 거론돼왔다. 국토부가 발표를 미룬 것은 이들 지역을 포함한 2차 신규 택지 후보지에 대한 사전검증 과정에서 투기 정황이 다수 발견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발표에 앞서 15만가구 공급이 가능한 후보지를 발굴하면서 사전조사를 진행했는데 몇몇 후보지는 해당 지역 내 5년간 월평균 거래량 대비 반기·분기별 월평균 거래량이 2~4배 증가했고, 외지인거래 비중이 전체 거래의 절반에 달하기도 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규 공공택지 공급이 일부 순연되긴 했지만, 부동산 투기와 부패를 발본색원하고 근본적 투기억제 장치를 마련하면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신규 공공택지의 원활한 공급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투기 정황이 있는 후보지에 대한 경찰 수사와 실거래 정밀조사를 완료하고, 투기근절을 위한 법령개정이 완료된 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내부에서는 하반기 중 다시 신규 택지 선정 작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장기간 표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투기적 거래의 실체가 확인될 경우 해당 택지는 선정 자체를 포기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원점에서 신규 택지 확보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 만큼 2·4대책 일정 전체가 순차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단 국토부는 경찰 수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어느 정도 윤곽이 확인되면 입지를 발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신규 택지에서 추후 투기 수요가 드러날 경우 광명·시흥 신도시의 사례처럼 ‘택지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LH 사태 이후 공급계획에 따른 단기적인 시장 심리 안정에도 효과를 못 보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부지에서의 주택 공급도 이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신규 택지 공급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완화 등의 조치로 기존 주택이 매물로 나오도록 정책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대중 명지대(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시가격 인상 속도도 조절하고, 보유세와 양도세 등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가 발표하는 물량은 실제 공급되는 데까지 시차가 있기 때문에 주택 매매시장을 활성화하면서 장기적으로 신규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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