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칼럼에서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를 비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모 자격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철학자의 주장을 소개했다. 철학자들은 이와 마찬가지로 저출산 문제에도 근본적으로 접근한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데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무에 문제냐고 묻는 철학자들이 있다. 물론 사회 과학자 중에서도 인구 과밀이 해소되어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저출산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철학자는 이 문제에 더 근본적으로 접근한다. 태어나는 것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인생이 살 만한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내가 살아보니…”라고 사람마다 자기 경험으로 말할 테니 체계화된 이론이 되기 힘들다. 누군가는 삶에서 쾌락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고통이 더 많다고 생각할 것이다. 철학자는 쾌락과 고통이 대칭적이지 않다는 근본적인 특성에 주목한다. 쾌락은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거꾸로 고통은 있으면 괴롭기에 없으면 좋다. 우리는 쾌락이 주는 이득보다는 고통이 주는 손해를 훨씬 더 크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어나는 쪽과 태어나지 않는 것을 견주어 보자. 태어나면 쾌락도 있고 고통도 있을 테니 본전치기이다. 쾌락이 더 많은 사람도 있겠지만 꼭 그럴지 장담할 수 없다. 반면에 태어나지 않으면 쾌락도 없고 고통도 없다. 그런데 고통은 없으면 항상 좋고 쾌락은 없어도 나쁘지 않으니 이 경우는 누구에게나 남는 장사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태어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철학자의 궤변 같아 보이는데, 어쨌든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논증이다.
최훈 강원대 교수·철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