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할 법적 근거 마땅치 않아 방치
처벌 방안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 제기

“얼마 전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으려고 시중에서 구한 모형 수갑을 본인 손에 찬 뒤 친구들을 찾아가 ‘경찰 감시를 피해 도주 중’이라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떠난 후, 사실로 믿은 친구가 112에 신고해 다수의 경찰력이 출동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경찰은 그를 처벌을 하지 못했습니다.” (112종합상황실 근무 A경위)
“코로나 시국에 바이러스 감염자를 쫓는 척 장난을 하거나, 찌르면 쑥 들어가는 모형 칼을 가지고 길거리에서 친구를 찌르는 척 하는 경우 이를 본 국민이 신고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희극인이 ‘실습 삼아 했다’거나 ‘영화 촬영 중이었다’는 등으로 진술할 경우 형사처벌은 할 수 없습니다.” (112종합상황실 근무 B경위)
거짓·허위 112 신고로 인한 공권력 낭비 및 시민 피해 등 폐해가 심각하지만, 거짓신고 유발자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은 현실이다. 이에 따라 거짓신고 유발자에 대한 법적 처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28일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치안정책연구’ 최신호에 실린 ‘112 거짓신고의 실태 및 근절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12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타인을 속여 거짓신고를 유발하게 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타인을 속이려는 의도 등으로 꾸며진 거짓 상황을 신고자가 실제 위급상황이라 믿고 신고한 경우, 신고자를 속인 사람에 대해 처벌할 법 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직접 112에 거짓신고를 한 사람은 경범죄처벌법 또는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지만, 타인의 거짓신고를 유발한 사람에 대해선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다. 이번 연구를 맡은 황정용 인천경찰청 112 관리팀장(경찰학 박사)은 “112 경찰관 대상 면접조사 결과, 타인을 속였는데 이에 속은 타인이 그 내용을 112 신고했고 이를 통해 경찰권이 실제로 발동된 경우, 타인을 속인 자가 처벌의 공백 지대로 남아있어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 팀장은 최소 6년 이상 112 경찰관으로 근무한 인천경찰청 112종합상황실 상황팀 소속 경찰관 7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했다.

현장 경찰관들은 타인의 생명·신체에 막대한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거짓신고를 막기 위해선, 신고 접수 단계에서부터 거짓신고 의심자에게 ‘거짓신고 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신고자와의 짧은 통화에 의존해 사건 내용을 판단하고, 단시간 내에 출동 지령을 내려야 하는 업무 특성상 접수 단계에서부터 거짓신고 여부를 판단하긴 힘든 만큼, 처벌 가능성을 고지해 신고자가 거짓신고를 스스로 철회할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심층면접에 참여한 한 경찰관은 “경찰관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 거짓신고에 대한 처벌을 고지할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긴급신고 112입니다’라고 정형화된 접수 첫 멘트를 하는 것처럼, 신고자들의 거짓신고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정형화된 고지 멘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신고 이력 데이터 등을 축적해 접수 단계에서 신고자가 과거 거짓신고를 한 적이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 등도 나왔다.
황 팀장은 “타인을 이용해 거짓신고를 유발한 자는 처벌의 사각지대로 두지 말고, 거짓신고를 유발할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선의의 국민 다수가 피해를 입는 결과가 발생한다면 책임을 묻는 별도의 형사처벌규정을 마련함이 바람직하다”면서 “112 경찰관들은 거짓신고로 의심되는 신고자에게 처벌 가능함을 명확히 고지하고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고지 멘트도 정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