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지검장 요청에 일정 조율
檢내부 “지검장 檢수사 불신” 지적
“권고 아닌 법적 효력 명시했어야”
법조계 일각선 제도 폐지도 주장
이성윤, 기소 임박·황제 조사 변수
포함 여부 주목… 늦어도 6월 초 취임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수사 결정 전 과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는 자세로 투명한 검찰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문무일 전 검찰총장)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도입 논의가 본격화된 건 2017년 8월이다. 당시 문 전 총장은 투명한 수사와 검찰에 대한 외부 통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수심위를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검찰은 이듬해부터 수심위를 운영했고, 삼성 부당합병 의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프로포폴 투약 의혹, 채널A 검언유착 의혹 등 주요 사건에서 검찰과 피의자 측이 수심위 위원들 앞에서 팽팽한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수심위 운영이 4년째로 접어들면서 비전문성·정치도구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심위는 기소 전 일반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정을 내려도 구속력이 없는 데다 기소 전 여론몰이로 검찰의 수사 독립성을 오히려 흔드는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김학의 출금’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수심위 개최를 요청하면서 기소 지연을 위한 ‘꼼수’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이 지검장이 요청한 수심위 개최를 위해 외부 위원들을 접촉하며 날짜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검사의 수심위 신청은 채널A 검언유착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에 이은 두 번째 사례다.

검찰 내부에서는 현직 검사장이자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자인 이 지검장이 수심위를 신청한 것은 ‘모순’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피의자 신분임에도 검찰 기소 전 외부 평가를 받겠다는 것은 검사장인 이 지검장이 정작 제 식구인 검찰 수사를 불신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검사는 “여론의 힘 또는 위원들의 판단을 빌려 기소 혹은 불기소 결정을 관철하려고 할 때 수심위 개최를 고민하게 된다”며 “총장이 되려는 사람이 수심위 판단을 받겠다는 판단은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2017년 수심위 도입을 권고한 대검 검찰개혁위원회에 참여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수심위 폐지를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검찰과 대검 검찰개혁위원회도 한번 해보자는 의견이 다수였기 때문에 결국 동의를 했지만 결과는 지금 목격하고 있는 바와 같다”며 ”수사기록과 증거도 보지 않고, 피의자와 참고인 조사를 직접 하지 않은 외부인이 혐의 여부와 수사 계속 여부 등에 관한 의견을 낸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이어 “검사는 전심전력을 다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사하고 그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수심위에는 법조인뿐 아니라 언론계·시민단체 등도 참여한다.
동국대 김상겸 교수(법학과)는 법률이 아닌 검찰 내 행정규칙에 근거한 수심위 제도가 지닌 태생적인 한계로 제도가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말 수심위가 필요했다면 검찰과 정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정식 기구로 만들어서 수심위 결정이 지니는 법적인 효력을 명시했어야 했다”며 “수사의 투명성과 외부 통제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수심위는 검찰도 피의자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수단이 됐다”고 말했다.

◆檢총장 후보군 금주 윤곽… 3∼4명 압축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후 두 달 가까이 공석이던 후임 검찰총장의 후보군이 이번주 드러난다. 법무부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후보추천위)에 전달할 후보군 압축 작업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김학의 출금’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후보군에 포함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오는 29일 오전 10시 정부과천청사에서 후보추천위 회의를 열어 3∼4명의 총장 후보자를 압축한다. 법무부는 지난달 국민 천거로 추천받은 후보자 중 차기 총장으로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을 선정해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추천위는 법무부가 1차로 추린 후보군 중 3명 이상을 추려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하면 박 장관이 후보 중 1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한다. 다음 주 후반 차기 총장 후보자 지명이 이뤄지면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이르면 5월 말, 늦어도 6월 초에는 신임 총장이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후보추천위의 최종 후보군에 이 지검장이 포함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꼽힌다. 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인 이 지검장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의 요직을 거쳤다.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한 뒤 두 번 연속 유임된 이 지검장은 여권 핵심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를 뭉갠다는 지적을 받는 등 대표적인 친정권 인사로 꼽힌다. 이 지검장은 총장 후보군 중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지만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점과 검찰의 기소가 임박한 상황,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황제 조사’ 논란까지 겹치면서 임명에 따른 부담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 지검장이 총장 후보군에서 밀려날 경우 김오수·이금로 전 법무부 차관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지검장의 선배 기수가 총장이 될 경우 이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유임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이 지검장과 연수원 동기인 구본선 광주고검장, 한 기수 아래인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도 후보군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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