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택시장이 2월 중순부터 상당히 안정세를 보인다.”
지난 1일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2·4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이같이 평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정부의 평가와 대조적으로 국민들은 사실상 집값 하락을 체감하지 못하겠단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경기 등 수요가 많은 지역은 여전히 아파트값이 뛰고 있으며 서울 소형 아파트 평균 매매가도 7억원을 넘은 상황인지라 정부의 평가와 현장의 온도차가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 “LH사태에도 불확실성 확대 안 돼… 집값 안정세”
정부는 2·4 대책 이후 나타난 부동산 시장 안정화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 등으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실장은 “(LH사태로 묻힌 게) 정부로서 마음 아프다. 2월부터 거래량이 많지 않고, 매물이 조금씩 늘어나고, 매매가와 전세가 상승률이 떨어지고 있다”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앙정부, 광역단체, 기초단체 사이에 마음을 모아 공급을 늘리고 최대한 안정화를 하는 데 노력할 시점”이라고 기존 공공 주도 공급 기조를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이 실장 외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집값이 잡히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보탰다. 그는 지난달 26일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사례에 따라 직전 거래에 비해 상당 폭 떨어지는 거래도 나타나고 있음이 관찰되고 있다”며 “LH 사태가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불확실성이 확대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자평했다.

◆여전히 치솟는 아파트값… “정부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집값 하락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기존 집 주변 전셋값 시세가 1억원 이상 올라 서울 구로구에서 경기도 부천시로 지난달 이사를 한 워킹맘 김모(32)씨는 “전세를 구하기 힘들어 부동산을 몇 군데를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이사 때문에 초등학생 딸의 학교도 옮겨야 해 아이가 잘 적응할까 걱정”이라며 “정부에서는 집값이 많이 잡혔다고 하던데 느끼기엔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상황이 나빠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정부의 공급 대책을 믿고 신혼집 구매를 미룬 이모(34)씨는 자신의 선택이 옳은 건지 확신이 없다고 했다. 이씨는 “예전에 사려고 했던 지역의 시세를 가끔씩 ‘네이버 부동산’ 등으로 찾아보는데 이번 달에만 2000만원이나 호가가 올랐더라”며 “앉아서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일단 정부 발표를 믿고 기다리고는 있는데 LH 사태도 있고 정부가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영끌’이라도 해서 살 걸 그랬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실제 서울 등 인기 지역 아파트 가격은 지난달에도 ‘최고가’를 경신 중이다. 7일 KB 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소형 아파트(전용면적 60㎡ 이하) 평균 매매가격은 7억6789만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억4193만원(상승률 22.7%) 올랐다. 강남권은 물론 외곽 지역의 오래된 아파트값까지 함께 오르며 ‘키 맞추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고가 아파트는 오름세를 더 키우며 ‘빈부격차’를 더 키우고 있다. 올해 3월 아파트 가격 상위 20%의 평균 매매가는 10억1588만원으로 하위 20% 1억1599만원의 8.8배에 달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8년 12월 이후 사상 최대로 벌어진 것이다.
정부의 우려와 반대로 지난해 ‘패닉바잉’을 했던 2030세대들이 이후 상당한 시세차익을 올린 점도 부동산 대책에 불신을 더하고 있다. KB부동산 월간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지난해 7월 9억533만원에서 지난달 10억9993만원으로 8개월 새 1억4960만원(15.7%) 상승했다. 같은 기간 부동산114 통계로도 서울 아파트 가구당 평균 매매가는 10억509만원에서 11억8853만원으로 1억8344만원(9.4%) 올랐다. 심지어 민간 시세 조사업체가 아닌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 통계에서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같은 기간 8억8183만원에서 9억711만원으로 약 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 “매매량으로 시장 수요 판단하기 어려워”
전문가들은 정부 발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실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에서 말하는 집값 안정세는 서울이 아닌 전국 기준, 아파트가 아닌 전체 주택 기준인 경우가 많아 국민이 체감하는 것과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제는 취득세 등의 거래비용 증가로 매매량은 더는 과거처럼 시장 수요를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되기 어렵다”며 “그래서 아파트 매매량 감소가 집값 하락의 변곡점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연구위원도 “3기 신도시 청약 당첨 등을 기대할 수 있는 수요를 제외하고 소득 기준에 걸리는 중산층 등 여건이 애매한 일부는 여전히 서울에서 저평가된 집을 찾아 구매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가 공급 계획을 내보인 만큼 제대로 된 효과를 내려면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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