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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실서 일하다 폐암으로 사망한 조리실무사…“업무상 질병” 첫 판단

입력 : 2021-04-06 22:00:00 수정 : 2021-04-06 18: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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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일한 A씨, 2017년 폐암 3기 판정…2018년 사망
근로복지공단 “직업성 폐암…업무상 질병 맞아” 인정
튀김 등 조리 과정서 나오는 ‘조리흄’ 과다 노출 판단
노조 “‘제2의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예방책 필요”
박화자 경기도교육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동자위원(왼쪽)이 6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에서 열린 학교 급식실 직업암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2년간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다 폐암으로 사망한 조리실무사에 대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한다”는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이 나왔다. 고온의 튀김 요리 등을 할 때 발생하는 연기에 장기간·대량 노출될 경우 폐암에 걸릴 위험성도 높아진다는 판단으로, 향후 급식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6일 근로복지공단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에 따르면 최근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업무상질병심의위원회는 2018년 4월4일 폐암으로 사망한 조리실무사 A씨 사건에 대해 ‘업무상 질병’이라고 판단 내렸다. 폐암으로 사망한 급식노동자가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도 내 B중학교에서 근무했던 A씨는 2017년 4월28일 폐암 3기 판정을 받았고, 2018년 4월4일 사망했다. 직업환경연구원 업무상질병심의위원회는 A씨에 대해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근무하면서, 폐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고온의 튀김, 볶음 및 구이 요리에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 조리 시 나오는 연기)에 낮지 않은 수준으로 노출됐다”며 폐암으로 인한 A씨의 사망과 급식노동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이 같은 심의위 판단에는 ‘지방이 함유된 조리기름·음식을 이용해 고온의 튀김·볶음·구이요리를 많이 할수록 조리흄에 노출돼 폐암 발생의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영향을 미쳤다. 앞서 국제암연구소(IARC)는 중국 산시성과 대만의 비흡연자 여성 등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고온의 튀김 요리로 인한 조리흄 노출 빈도·누적량이 증가할수록 폐암에 걸릴 위험도도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학비노조가 공개한 A씨 사건 전문조사 심의 결과 요약자료를 보면, 2016년 9월부터 2017년 1월까지의 B중학교 급식 조리일수(84일) 중 튀김·볶음·구이 요리가 포함된 건 68일(81%)이었다. 이를 4명의 조리 인력이 번갈아 맡으면서, A씨는 평균적으로 4일에 한 번씩 직접 튀김 등의 조리를 한 것으로 추정됐다. 조리 인력 1명당 조리 인분(그릇)을 100명(총 400명)으로 계산할 경우, A씨가 1년에 직접 하는 튀김 등의 요리는 총 1만6800인분에 해당하며, 하루 평균 46인분에 달한다. 직업환경연구원은 전문조사 심의결과 회신서에서 “튀김 요리가 반찬으로 제공되는 특성상 1인분이 너무 과대평가되었다고 가정할 경우에 튀김 요리 1명당 4분의 1인분으로 계산을 해도, 노출 지표는 총 138그릇-년에 해당해 이 역시 폐암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범주에 속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직업환경연구원이 2019년 진행한 작업환경평가에선 장조림 데침·조림 작업 시 조리실 내 평균 포름알데히드 농도가 346ppb로 고용노동부 노출기준(300ppb)를 초과했으며, 장조림과 흑설탕을 솥에서 조리하는 과정에선 최고 농도 1만7623ppb를 기록하기도 했다. 포름알데히드는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이외의 조리 작업 과정에서도 각종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과 입자상 물질(PM) 노출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심의위는 조리실무사 1인당 100명이 넘는 식수를 담당하는 가운데 고온의 튀김·볶음·구이요리를 하는 일들이 잦았으며, 총 12년간 B중학교 등에서 근무한 A씨가 오랜 기간 발암물질에 노출돼 폐암에 걸렸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유족 진술 등에 의하면 2016년 여름부터 B중학교 내 급식 조리실에선 후드, 공조기 등 환기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조리 연기가 정체돼 있는 경우도 많았으며, A씨 외에 두 명의 급식노동자가 근무 중 구토 증상과 어지럼증 등을 겪기도 했다.

 

이 사건을 ‘제2의 삼성전자 백혈병 산업재해’로 규정한 학비노조는 “사건 발생 이후 4년이 지나고 학교 급식소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 대상으로 바뀌어 각 교육청에서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 중에 있으나, 현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면서 “폐암을 비롯한 급식실 근무자들의 암 발생 비율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현실이며, 역학조사와 예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학비노조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마트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 당국에 급식노동자 직업암 발병 위험에 대한 대책 마련도 촉구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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