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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사라진 선거… 논란의 중심에 선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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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06 15:00:00 수정 : 2021-04-06 14: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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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 등 일상적 표현에 선거법 위반 소지 제동
시민단체 “규제 장치인 ‘공직선거법’만 남았다” 반발
선관위, 국민의힘 제작한 현수막 문구 사용금지 통보
공정성 명목으로 ‘표현의 자유’ 제한 위축효과 가져올 수도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사전투표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 선거에서 ‘표현의 자유’가 사라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비롯한 각급 선관위가 ‘부동산 투기’ 등 유권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에 대해 잇달아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제동을 걸면서다. 선거 기간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이슈나 어젠다를 드러내 유권자 간의 건전한 토론을 유도하는 등 선거의 질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권장돼야 하지만 선관위가 불분명한 잣대로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선거의 주체인 시민이 사라지고, 규제 장치인 ‘공직선거법’만 남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내로남불’ ‘무능’ ‘정직한 후보’ 모두 안 된다는 선관위

 

6일 선관위에 따르면 최근 국민의힘이 투표 독려를 위해 제작한 현수막 문구인 ‘투표가 위선·무능·내로남불을 이깁니다’에 대해 사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특정 정당을 쉽게 유추할 수 있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 부산시선관위는 ‘부동산 투기 없는 부산을 위해 반드시 투표합시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에 대해서도 ‘불허’ 통보를 했다. 이 문구에 들어간 ‘부동산 투기’라는 표현이 특정 후보를 쉽게 떠올리게 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선관위는 아울러 ‘4월7일! 당신의 투표가 거짓을 이긴다’, ‘부산 시민의 힘! 시민의 소중한 한 표에서 나옵니다’의 문구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시선관위는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문구에 대해서도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공직선거법 제90조에 따라 이 문구가 선거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성평등에 투표한다”라는 문구 또한 특정한 정당이나 후보가 연상된다며 사용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5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방문 한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선관위의 공정성에 항의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현수막 문구 불허, 일간지에 야권 후보 단일화 촉구 광고를 낸 시민에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 통보, 투표 독려 문구에 '내로남불' 등 표현 사용을 불허한 선관위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여당 뿐 아니라 야당 후보를 떠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된 문구도 많았다. 예를 들어 선관위는 ‘정직한 후보에게 투표합시다’나 ‘낡은정치 청산하기 위해 4월 7일은 투표하는 날!’이라는 문구에 대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떠올리게 해 불허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투표합시다’라는 문구는 기호 8번 오태양 후보가 속한 ‘미래당’이 떠오른다면 불허했다.

 

일상적으로 유권자들이 사용하는 각종 문구가 선관위 유권 해석에 따라 졸지에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단어로 규정된 셈이다.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정치참여 권리를 불허한 선관위 규탄' 기자회견에서 선관위 복장을 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관계자가 캠페인 문구에 위반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문구와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선거법 위반이라며 사용할 수 없다고 한 서울시 선관위의 결정을 규탄했다. 연합뉴스

◆ 국민들의 선거운동 참여 제한하는 선관위

 

현수막 등에 사용하는 각종 문구에 대한 선관위의 이런 개입은 선거 기간 국민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성’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선관위가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일종의 ‘위축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펴낸 연구보고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직선거제도 관리실태 분석 및 개선방안’을 보면 선거관리는 기본적으로 공정성을 보장하면서 선거 자유를 확대한다는 목표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정성은 올바른 정보의 전달, 외부 영향력 배제, 선거운동 주체 간 형평성 보장 등을 말한다. 가장 기본적인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연구진은 정당, 후보자, 유권자 등 선거와 관련된 모든 주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인 ‘선거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다 확대된 참여가 유권자와 후보자 간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게 만들고, 선거의 각종 쟁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후보자 간 경쟁을 유도해 투표 선택의 질이 높아진다고 연구진들은 덧붙였다.

5일 선관위의 투표 독려 문구 판단 사례 모음에 따르면 선관위는 이번 재보선과 관련해 ''사전투표 합니다!'' ''투표로 ○○시 지켜주세요'' ''투표가 무능을 이깁니다'' ''투표의힘! 투표하면 바뀝니다!'' 등의 문구에 대해 사용을 금지했다. 연합뉴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관위의 잇따른 개입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보다는 기계적인 공정성만을 강조하며 선거운동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있는 셈이다.

 

선관위의 이 같은 개입은 편향성 논란은 물론 시민들의 입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단비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지난달 “이번 선거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사건에 대한 답이어야 했다. 반성과 성찰로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하고 보다 성평등한 조직문화와 서울시를 위한 심사숙고된 정책들이 나왔어야 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진정한 성평등 정책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평등이라는 단어마저 사용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습니까”라며 “선관위의 판단은 성 평등한 서울을 원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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