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중 2건 수정·조건부 통과
정부의 계약업무 지침까지 무시
위탁 부결시켜 제 식구 감싸기도

일부 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예고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핵심 경영사항을 논의하는 이사회를 부실하게 운영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사진은 이사회 정보를 거의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고, 일부 회의에선 정부 지침을 거스르면서까지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보였다.
22일 LH에 따르면 지난해 이사회에 상정된 35개 안건 중 31건이 원안 그대로 의결(보고)됐다. 나머지 4건 중 1건은 문구를 일부 수정한 뒤 의결됐고, 1건은 조건부 의결됐으며 2건은 부결됐다. 이 중에서 부결된 2건은 지난해 1월 17일과 6월 16일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으로, 두 건 모두 ‘계약사무 조달청 위탁안’이었다. 두 안건은 LH 직원들의 계약사무 관련 비리 및 계약사무 관련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해 상정됐다.
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제7조는 공기업 임직원이 계약과 관련한 혐의로 기소되거나 감사원·내부 감사에서 중징계를 요구받은 경우 소관 계약사무를 조달청에 위탁하는 방안을 마련해 이사회 심의를 거쳐 위탁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두 건을 모두 ‘위탁 불찬성’으로 부결시켰다는 점에서 LH가 정부가 만든 규칙까지 무시하고 제 식구 감싸기에 몰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사회 운영도 투명하지 못했다. LH 이사회는 지난해 35건의 안건을 논의하면서 원안 그대로 의결된 경우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논의과정이나 이사들의 발언 등 구체적인 내용을 회의록에 남기지 않았다. 이사회 회의록에는 안건에 대한 결론과 함께 참석자 발언요지를 남겨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결의했는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단 한 건도 없었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 제61조는 “공기업 이사회 회의의 개최 일시, 장소, 참석자 명단, 회의에서의 참석자 발언 내용, 회의 결과 등을 기록한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지난해 총 10차례 열린 LH 이사회 가운데 5번이 서면으로 대체된 것도 부실한 운영 사례로 꼽힌다. 공기업 경영에 관한 지침 제57조는 “이사회 회의는 대면회의를 원칙으로 하며, 서면에 의한 이사회 회의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도로 운영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해 이사회의 절반을 서면으로 대체한 것은 책임 있는 이사회 운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일부 이사들의 전문성을 놓고도 논란이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LH는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으로부터 당시 8명의 비상임이사 중 6명이 문재인정부의 이른바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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