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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도 혀 내두르는 LH 직원의 나무 스킬 “원주민과 게임도 안 돼”

입력 : 2021-03-09 07:00:00 수정 : 2021-03-09 08: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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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에 상품성 없는 용버들 나무 심었더라”
“LH 직원이 희귀수종인 왕버들나무 심었다”
“마치 모내기한 것처럼 나무들이 빽빽했다”
LH 일부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의 한 토지에 묘목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으로 때아닌 ‘나무 심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H 직원들이 더 많은 토지보상금을 받기 위해 신도시 발표 전 농지를 매입해 묘목들을 심는 꼼수를 썼다는 목격담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어서다. 나무의 종류나 성장 속도 등이 보상금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엇갈린 의견이 나온다. 그만큼 토지 보상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감정하는 직원의 재량이 크게 작용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LH 직원들이 토지를 수용당하는 원주민보다 더 큰 보상금을 받아가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용버들, 나무 잘라 꽂아도 살아 선호”

 

8일 토지보상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토지를 보상할 때 이미 심어져 있는 나무에 대해 손실보상을 하게 돼 있다. 금액 산정에는 나무의 종류, 규격, 수량, 식수면적, 수익성, 이식 가능성, 이식 난이도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보상 과정에서 감정평가를 실시해 손실보상 평가액을 산정한다. 

 

보상액 산정에는 나무의 품종보다는 이식비(옮겨 심는 비용)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토지보상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법률상 나무는 이식비(이전비)를 한계로 보상하도록 돼 있으며 현장에서도 묘목 가격이 이식비보다 낮은 경우라도 사업 속도를 높이고자 이식비를 관행적으로 지급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LH 토지보상 업무를 전문적으로 해온 상록행정사사무소 김영원 대표는 “나무가 (품종이) 좋은지 안 좋은지보다 이를 옮겨심을 때 비용이 많이 드는지가 보상금액 산정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며 “옮겨심을 때 나무가 죽는 비율(고손율)이 높으면 보상금이 더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고손율은 10∼20% 선에서 책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연합뉴스

LH 직원들이 상업성이 떨어지는 용버들, 산수유나무 등을 선호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김 대표는 “나무를 잘라 꽃꽂이를 해도 살아남는 게 용버들이다. 거기다 잘 자란다. 1∼2년 심어놨는데 그만큼 빨리 자라면 이식비를 더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산수유나무는 용버들만큼 잘 자라지는 않지만 그것도 잘 죽지 않는 나무”라고 설명했다. 보상금을 노린 직원들이 매년 밭갈이를 해줘야 하는 농작물보다 관리하기 쉬운 조경수를 심었다는 의구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3기 신도시로 선정되기 전 LH 직원이 사전 매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기 시흥시 과림동 한 농지에 묘목이 빽빽이 심겨 있다. 연합뉴스

◆1000원짜리 묘목 5년이면 3만원 받아

 

직원들이 생장에 방해가 될 만큼 나무를 빽빽이 심은 것은 최대한의 보상금을 많이 받아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묘목 등 어린 나무는 단위면적당 몇 그루가 있는지 계산해 전체 면적 기준으로 이식비를 계산한다. 반면 어느 정도 자란 나무는 전체 면적에 정확히 몇 그루가 심겨 있는지를 토대로 보상금을 책정해 묘목 대비 보상금이 많다.

 

실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과실수가 아닌 조경수는 집약적으로 밀집해 심어도(밀식재배) 면적 기준을 적용해 일률적으로 이전비를 적용하는 것은 위법하므로 그루당 이전비를 계산해야 한다. 해당 판례에서 면적 기준 36억원으로 결정됐던 보상금은 대법원 판단에 따라 104억원까지 뛰었다. 

 

김 대표는 “나무가 몇 년 자랐는지에 따라 옮겨심는 비용이 다 다르다. 5년 자랐다면 3년 된 나무보다 이식비가 더 많이 나온다”고 했다. 일괄적으로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1000원짜리 용버들 묘목이 5년 지나면 대략 2만∼3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홍남기(왼쪽 두번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부처와 함께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 도중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원주민보다 LH직원이 더 많은 보상금… 전문가 “게임 안 돼”

 

보상금을 산정할 때 평가자의 재량이 많이 들어가 일반인은 이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법률에 토지보상과 수목 보상 기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규정돼 있지만 법이라는 게 적용하는 사람에 따라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 꼭 원칙이 지켜지는 건 아니다”라며 “시행지구마다 수목의 가치를 평가하는 보상 담당자나 감정평가업자의 주관도 개입될 여지가 있는 등 여러 변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LH에서 보상 업무를 진행했던 직원들은 이런 기준을 잘 알고 있는만큼 수용민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부동산 전문가인 국민의힘 김현아 비대위원은 지난 4일 CBS라디오 김현정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국민들은 토지보상 기준을 잘 몰라 보상금을 제대로 받는 경우가 드물다”며 “나무도 원가를 다 인정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그 지장물 조사를 하는 게 바로 LH 보상가 직원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이러한 사정 때문에 현장에선 각 집집마다 보상가가 달라 주민들의 울분이 굉장히 심하다고도 전했다.

 

김 위원은 토지보상 담당자들이 정확히 보상을 많이 받을 나무들을 심었을 것이라며 “실제 보상에 들어갔을 때 LH 직원들을 통해 지장물에 대해 충분히 후하게 판단해 줄 여지도 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김 대표도 토지보상 현장에서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했다. 그는 “사업시행자는 보상 전문가들이다. 일반 수용민들과 비교해 법령 지식과 보상 테크닉 등에서 소위 ‘게임’이 안 된다. 수용민들은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씁쓸해했다.

 

이어 “원래 살고 있던 수용민들은 개발사업으로 특별히 희생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게 토지보상법의 입법 취지”라며 “정작 원주민들은 기준을 몰라 제대로 보상을 못 받고 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더 많이 챙겨가는 건 정당하지 못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세균 국무총리. 뉴스1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국무총리 집무실에서 “LH직원 공직자 투기는 국민 배신행위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파헤쳐 비리행위자 패가망신 시켜야 할 것”이라며 수사기관을 향해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한 총리실 관계자는 “국세청, 금융위원회까지 참여하게 되면서 LH 전직원들의 2000만원 이상 자금흐름에 대해서도 전수조사가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며 “강제수사를 받기 이전에 자발적 신고를 하는 게 자신들에게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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