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정확히 125년 전인 1896년 2월 고종은 경복궁 건청궁에서 현재 중구 정동에 위치해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했다. 고종의 피신에는 을미사변이 큰 계기가 되었다. 1895년 10월 경복궁의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면서, 한반도에서 일본의 우위는 절대적이 되었다. 친일세력이 득세하고 왕에 대한 위협도 커지자 고종은 경복궁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1895년 11월 친미, 친러파 관리들이 중심이 되어, 고종을 미국 공사관에 피신시켜 친일정권을 무너뜨리려 했다. 이 사건은 춘생문을 통해 피신하려 했다고 하여, ‘춘생문사건’이라 하는데, 내부의 밀고로 미수에 그쳤다.
이후에도 고종의 파천 시도는 이어졌고, 1896년 2월 11일,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공사관 건물은 러시아 출신 건축가 사바틴이 건축하였다. 사바틴은 1883년 인천해관의 직원으로 조선에 들어와 1904년까지 궁궐과 정동 일대 근대 건축물 등의 설계와 공사에 참여했는데, 공사관 건축에도 참여한 것이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건물과 3층 탑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석재와 벽돌을 사용하였다.
1894년 조선을 방문한 후, 1898년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저술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다른 높은 언덕은 러시아 공사관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 높은 탑과 화려한 정문은 이 도시에서 매우 이채로운 물건이었다”고 서술하여 러시아 공사관이 매우 이국적인 형태의 건물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에도 3층 탑의 일부가 정동에 남아 있어, 당시 러시아 공사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여를 보낸 후인 1897년 2월 20일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했다. 일본의 세력이 여전한 경복궁이나 창덕궁보다는 러시아, 미국, 영국 등 외국의 공사관이 주변에 있는 경운궁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2016년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고종의 피난길에 대한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2018년 10월부터 ‘고종의 길’ 정식 개방이 이루어졌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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