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이 21일 정의선 회장 취임 100일을 맞아 그룹의 미래가 달린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신축 설계 변경안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자동차 업계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정 회장은 취임 후 가장 큰 투자가 될 GBC를 두고 실리를 챙기는 쪽으로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자동차업계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GBC 부지에 105층(높이 569m)의 업무동 1개동과 숙박·업무시설 1개동, 전시·컨벤션·공연장 등 5개 시설을 조성하는 종전의 설계안과 이를 70층 2∼3개동이나 50층 3개동으로 분할하는 설계 변경을 검토중이다. 현대차그룹 측은 “내부적으로 설계 변경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이 그동안 보여온 실리 중심의 의사 결정과 속도감 있는 사업추진 방식에 미뤄 층고를 낮추는 안으로 설계를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건물의 높이를 낮추고, 2∼3개 동으로 나눌 경우 공사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 고층 건물로 인해 공군 레이더의 작전 제한이 발생하는 문제와 헬기의 비행로 조정 등과 관련한 추가 비용도 낮아질 수 있다. 설계 변경이 되면 원안의 공사비 3조7000억원보다 최대 1조∼2조원 가량 비용을 줄이고, 공사 기간도 단축 할 수 있을 것으로 건축 업계에서는 예상한다. 초고층 건물은 공사 난이도가 높아 공기가 길고 이에 따라 비용도 증가한다.
비용적인 측면 외에도 건물 높이를 낮출 경우 현대차그룹이 집중 투자중인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분야가 활성화 됐을 때를 고려한 설계를 반영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GBC 옥상에 스카이포트(이착륙장)를 운용할 경우 105층 1개동 보다는 50∼70층의 2∼3개 동이 안전상으로도 유리하고, 활용도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시는 설계 변경안이 공식 접수되면 도시관리계획 변경 사항인지, 건축계획 변경사항인지를 따져볼 예정이다. 도시관리계획 변경에 해당하면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시는 “층수 변경이 주변 환경 등에 크게 영향이 없다고 하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남구청 등 일각에서는 이 설계 변경안에 대해 반발하고 있지만 실제 설계 변경 결정에 큰 영향은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초구 양재동의 현대차·기아 사옥의 경우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이 몰려 있어 글로벌 5위의 자동차 제조사라는 위상과 비교해서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현대차는 GBC 신사옥이 완공되면 기존 양재동 사옥은 남양연구소 등의 연구개발 인력을 이전 배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 취임 이후 숨가쁘게 대규모 투자 결정을 이어온 가운데 업계에서는 신사옥 결정도 그의 최근 경영 스타일이 반영 될 것으로 예상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GBC 문제는 자동차 시장이 급변하면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며 “미래차 분야 투자를 우선순위로 두다보니 신사옥을 두고 단순한 상징성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안까지 검토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고 센터장은 “정 회장이 취임후 지난 5년간 밀린 숙제인 미래차 분야 투자를 근 1년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해내고 있다“며 “미래를 향하는 방향성은 보여줬으니 이제 남은 문제는 노조나 현대차 직원들이 이 계획에 맞춘 실행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신사옥 계획은 2006년 처음 시작돼 원래 성동구 성수동에 110층을 목표로 추진하다가 서울시의 반대로 무산됐다가 이후 한국전력공사의 삼성동 부지를 2014년 매입해 현재 본격적인 착공을 앞두고 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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