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부터 식 미뤄왔던 커플들
“기약 없이 연기 더는 못해” 강행
“축복받을 행사 눈치보며 해” 눈물
‘이 시기에 무슨…’ 하객 말에 상처도
수도권 식장 50인 미만 금지인데
로비 이용 정원 초과 ‘꼼수’도 눈살

서울에 사는 최모(30)씨는 지난 주말 결혼식을 ‘강행’했다. 지난해 초 결혼할 예정이었던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끝내 2020년에는 결혼하지 못했고, 두 번의 연기 끝에 결국 해를 넘겨 식을 올렸다.
그의 결혼식은 ‘강행’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쉽지 않았다. 최씨는 예식장·웨딩업체들과 수차례 계약을 조율하느라 고생한 데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상향돼 예식이 금지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결혼식을 치렀지만, 식장 내 인원이 50인 미만으로 제한된 데다 식사대접도 금지돼 멀리서 찾아와준 하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이 시기에 꼭 결혼식을 해야 하냐”는 말들도 최씨를 찔렀다. 그는 “인생의 중요한 행사인 만큼 식을 아예 생략하는 것은 힘들었는데 ‘식이 뭐가 중요하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더는 미룰 수 없어 힘들게 식을 진행했는데 축하보다 안 좋은 말들이 들리니 마음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한숨이 길어지고 있다. 결혼식을 수차례 연기한 이들은 힘들게 식을 올리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쫓기듯 결혼식을 올리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거리두기 규정을 피하는 ‘꼼수’ 결혼식을 올리는 이들도 있다.
3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은 거리두기 2.5단계에 따라 결혼식장 하객 수(신랑·신부 포함)가 49명으로 제한된다. 비수도권은 99명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이들이 결혼식을 미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마음고생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10월 혼인 건수는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특히 4월 혼인 건수는 전년보다 21.8%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많은 예비부부들은 ‘기다리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생각으로 식을 미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고민이 커졌다. 특히 거리두기 3단계가 시행될 경우 예식장은 집합금지 조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더 미뤘다가 결혼식을 아예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많다.
온라인 결혼 준비 카페 등에는 결혼식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줄을 잇는다. 결혼식을 한 달 앞뒀다는 한 예비신부는 “거리두기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결혼 준비로 가장 바빠야 할 시기에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야말로 피가 마른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결혼식장에서는 인원 제한을 피하기 위한 꼼수도 등장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예식장 내 인원은 50인 미만으로 제한되지만, 신부대기실과 로비 등에는 인원 제한 규정이 없는 허점을 이용해 많은 수의 하객을 받는 식이다. 지난달 말 경기도의 한 예식장에서 진행된 A씨의 결혼식에는 약 150명의 하객이 다녀갔다. 예식장 안에는 49명만 들어갔지만 별도 연회장에 49명이 더 들어갈 수 있었다. 또 식장 문을 개방한 채 식을 진행해 많은 이들이 로비 등에 서서 식을 지켜봤다. A씨는 “예식장 측에서 신부대기실과 로비 등에는 인원 제한이 없으니 사람이 많이 와도 괜찮다고 해 그냥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달 중순 결혼식을 앞둔 유모(38)씨는 “가족과 친척 위주로만 초대해서 최소한으로 진행하려고 하는데 규정을 피해 꼼수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허탈감이 든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결혼식이 아예 금지될까봐 걱정”이라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규정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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