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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연대의 모범 보여준 서울시향의 합창교향곡 랜선라이브

입력 : 2020-12-24 02:00:00 수정 : 2020-12-23 21: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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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슈텐츠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 객원 지휘자가 이끄는 서울시향과 국립합창단, 성악가들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을 지난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무관중으로 온라인 생중계 공연했다. 서울시향 제공

예술은 사회에 어떻게 복무하는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송년 연주회로 정답을 보여줬다. 불굴의 의지가 충만한 베토벤 음악으로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역병에 신음하는 대중을 격려했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12월은 발레 ‘호두까기인형’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계절. 그러나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에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 공연은 취소됐다. 마찬가지로 때로는 연합 합창단까지 등장할 정도로 대규모 인원이 등장하는 ‘합창’ 역시 무대에 올리기 힘들어졌다. 고민 끝에 서울시향은 핀란드 출신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야코 쿠시스토에게 편곡을 의뢰해 이 장대한 대곡을 실내악으로 축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야코 쿠시스토는 “베토벤의 작품은 더 이상의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최대한 원곡의 틀을 유지하며 편곡을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쪽을 택했다”며 “원곡이 가지고 있는 소리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가장 유사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해결책을 찾으려 시도했다. 올해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고된 시간이었으며, 이 작업을 위임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소감을 남겼다.

 

덕분에 합창단을 포함해 지난해 공연 때는 200여명에 달했던 출연진이 올해는 64명으로 줄어들었다. 서울시향은 객석도 무관중으로 비우는 대신 네이버 TV 채널과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공연 시간만 관람할 수 있는 온라인 실황 중계를 택했다.

 

무대 역시 연주자 간 거리 두기와 투명 아크릴판으로 만들어진 가림판, 그리고 관악기 주자를 제외한 모든 연주자와 지휘자가 마스크를 쓴 코로나 일상 풍경에서 시작된 온라인 ‘합창’은 커진 여백 사이에서 만들어진 선율의 집중력이 돋보인 연주였다. 원래 19명이 연주해야 할 관악 파트는 8명만 무대에 오를 정도로 악기 수는 대폭 줄었다. 그만큼 음의 풍성함은 온전한 연주 때보다 줄어들었지만 각 악기가 풀어놓은 주제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됐다. 무대와 객석 거리를 잴 수 없는 랜선 중계였지만 공연장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카메라 다수가 동원된 영상은 객석에서 감상했다면 포착하기 힘들었을 악기 연주자의 섬세한 손놀림까지 부각하며 이런 공연의 집중력을 더욱 높였다. 랜선 중계 장점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특히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진 ‘합창’ 마지막 악장은 이날 연주의 각별한 의미를 극대화했다. 역시 거리 두기를 하고 합창석에 앉아있던 국립합창단원은 물론 4인의 성악가 모두 마스크를 쓴 그대로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대신 더욱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릅시다”로 시작하는 ‘환희의 송가’를 불렀다. 실상 이날 공연은 출연진 모두 공연 직전 실시한 검사에서 코로나19 음성을 확인해 방역 안전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연주자는 물론 성악가까지 마스크를 쓴 채 노래를 부른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마스크 때문에 겪는 불편이 확연하게 드러나는데도 굴하지 않고 인류의 형제애를 소리높여 외치는 성악가와 합창단의 ‘환희의 송가’는 그 자체로 역경의 시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강렬한 울림을 전파했다. 극장 밖과 마찬가지로 모두 마스크를 쓰고 공연에 임하는 것으로 “대중과 함께 이 시기를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서울시향과 소프라노 박혜상, 테너 박승주,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베이스 박종민과 국립합창단의 어려운 결정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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