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왜 코로나19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했는지 말해주는 무능과 오판, 복지부동의 실상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15일에야 해외 백신 확보를 지시했고 정부가 실제 행동에 돌입한 것은 지난달 하순이라고 한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지난 4월부터 치료제·백신 개발 및 물량 확보 지시를 했다고 브리핑했지만 9월 이전에는 국내 백신 개발만 강조했다. 9월에는 화이자·모더나 등 안전성이 검증된 백신 물량은 이미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방역 전문가들이 줄곧 백신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정부는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백신 확보 물량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34위에 머물렀다. 인구 대비 백신 확보 물량이 우리나라보다 적은 국가는 아이슬란드·콜롬비아·터키 3개국에 불과했다. 캐나다·영국·뉴질랜드 등 ‘백신 선진국’은 지난 봄·여름부터 적극적으로 백신 입도선매에 나섰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확보한 물량은 언제 도입될지 미정이다. 정부는 화이자·모더나·얀센 백신의 경우 총 3400만명분을 확보했다고 주장하지만 구매 계약을 확정짓지 못해 도입 시기가 불분명하다.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결정적인 패착이다. 문 대통령은 “모든 중대 재난·재해의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라고 말해 왔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6월 백신 TF팀을 구성했지만 정작 본인은 빠지고 정부 부처 실무자만 참석했다고 한다. 정책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과 언론의 비판을 ‘백신의 정치화’라고 치부하며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으니 실망스럽다. 정부는 어제 “우리나라가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할 이유가 없고, 백신 안전성은 국민을 위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백신을 언제 맞을지 몰라 불안한 국민의 심정을 여지껏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이 생기면 코로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인구의 70% 정도가 접종해야 한다. 백신 접종 개시 시점보다 집단면역에 도달하는 시점이 더 중요한 것이다. 정부는 백신 확보 실패에 대해 변명만 할 게 아니라 그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사력을 다해 백신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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