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연구하는 학자 중 풀지 못한 숙제 중의 하나가 왜 1988년 전후 갑자기 교회를 지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풀리지 않던 숙제를 북한 외교관 출신 국회의원(국민의힘)인 태영호 의원이 풀어줬다.
태영호 의원은 13일 밤 8시49분부터 10시간 2분간 계속된 국회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에서 수많은 정보를 쏟아내는 가운데 북한의 종교 관련 내용도 상당수 포함됐다.
태영호 의원은 “북한은 건국 이후 줄곧 반종교정책을 폈기 때문에 1988년까지 교회나 성당이 단 한 곳도 없었다”고 전제 한 뒤, “하지만 1988년 갑자기 김일성이 빨리 교회당을 지어라” 하고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태영호 의원 설명에 의하면, 김일성이 급히 교회 건축을 서두르라고 이유는 뜻밖에도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88서울올림픽과 관련 있다. 가뜩이나 남북의 국력 운동장이 남측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찰나에 88서울올림픽마저 성공하면 큰일이라고 판단한 김일성이 이를 방해하려고 맞불격인 1989년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유치한 것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애초 북한은 대한항공(KAL)기를 폭파해 각국이 무서워서 서울올림픽 참가를 꺼릴 것으로 판단했으나, 오히려 소련 중국 동독 등 공산권 국가들이 서울올림픽에 모조리 참가하는 의외의 역효과가 났다. 천인공노할 대규모 테러에 놀란 각국이 서울올림픽을 ‘벽을 넘어서’라는 구호처럼 반테러 평화축제로 승화시킨 것이다.
89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유치한 북한은 외국인 참가 예상 인원을 7만 명으로 추산하고 그들의 특징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70%가 가톨릭교인 이슬람교인 포함한 범 기독교인이었다. 그들이 평양에 오면 당연히 일요일 날 예배를 본다며 교회를 찾을 텐데 교회가 전무한 북한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된 것이다.
모태 기독교인 출신인 김일성은 급히 실무자들에게 “평양, 원산, 신의주 등 전국 주요 도시 10여 곳에 빨리 교회당을 지어라” 하고 지시했다. 교회가 가장 먼저 들어선 곳은 김일성이 어린 시절 다녔던 고향인 만경대의 봉수교회(1988.9)였다. 이어 교회 장로였던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 다녔던 칠골교회(1988.9)와 장충성당(1988.9)이 같은 해 나란히 들어섰다.
하지만 당초 10여 곳에 지으려던 교회 건립은 3곳으로 끝났다. 그 이유에 대해 태영호 의원은 봉수교회 건립 이후 공산주의 사상성과 당성이 충실한 가짜 신도들로 신자들을 채웠으나 그들 중 일부가 진짜 신앙이 생기는 것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 김일성 지시로 더 이상의 교회 건립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가짜 신자들은 특히 4분의 4박자의 단조로운 혁명가곡이 아닌 다채로운 멜로디인 성가에 매료돼 교회 출석을 즐기게 되는 의도치 않는 결과가 나와 추가로 세우려던 교회 건립 계획이 좌초되었다는 것이다.
물은 호기심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 담장에 붙어 채보(성가 악보를 그림)하다 발각된 사건과 공연히 교회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숨은 기독교 신자의 체포 등도 더 이상의 교회 신축을 취소하는 이유가 되었다. 북한 보위부 당국은 “아직도 숨은 신자가 있을 수 있으니 잘 감시하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교회 인근에서 망원경을 통해 감시한 결과, 지하 교인들이 교회 주변을 서성이던 것을 단속해 실토를 받아냈다.
한편, 북한은 2007년 봉수교회를 개축하며 ‘십자가가 잘 안 보이게 하라’는 당국의 은밀한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십자가 양 옆에 탑을 쌓아 옆에서는 십자가가 안 보이게 했다.
태 의원은 북한 종교 관련 이야기를 마무리 하며 “북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정확한 대북 통일정책을 수립할 수 있고, 북한 주민에 다양한 정보를 투입시켜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하며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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