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양팀 벤치 女코치, 필드엔 女심판
신체 한계 이유 ‘남성 독점’ 축구·야구 등
지도자·보조 선수로 여성들 당당한 도전
2024 파리올림픽 사상 첫 남녀 동수 출전
7전8기 끝에 MLB 첫 女단장 된 킴 응
UEFA 챔스리그 최초 女주심 프라파르
미식축구 키커로 출전 남성들과 뛴 풀러
“내 뒤 따르는 여성들 위해 기회 만들 것”
2020년 9월27일(현지시간)은 미국 프로스포츠에 새 장이 열린 날이다. 거친 태클이 난무하는 가장 남성성이 강한 스포츠로 꼽히는 미식축구리그인 미국프로풋볼(NFL) 경기장 중요 포지션마다 당당하게 여성들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열린 워싱턴과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경기에서 워싱턴 벤치에는 여성 인턴 코치인 제니퍼 킹이, 클리블랜드에는 NFL 역사상 첫 여성 포지션 코치로 이름을 올렸던 칼리 브라운슨이 있었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필드 안에도 NFL 최초의 풀타임 여성 심판인 사라 토마스가 있었다. 여성에게 금단의 구역처럼 여겨졌던 공간에서 양 팀의 코치와 심판까지 여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이색적인 장면을 넘어 시대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대부분 남성 중심인 프로스포츠는 ‘금녀의 벽’ 혹은 ‘유리 천장’으로 불리며 어떤 방식으로건 여성들을 배척해 왔다. 하지만 그 빈틈을 찾아 벽에 균열을 만들고 유리에 금을 내는 여성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은 할 수 없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뿌리 깊게 박힌 편견과 싸우며 스포츠에서 여성들의 참여와 지위를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여성끼리 하면 된다고? 왜 그래야만 하는데
많은 사람이 여성들의 스포츠에 대한 진입장벽이 이미 엄청나게 사라진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여성들의 사회활동 자체를 막고 있는 일부 중동국가에서나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제약받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실제 과거 여성이 체력적으로 할 수 없거나 여성이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종목이라고 여겨졌던 마라톤, 축구, 야구, 복싱, 격투기 그리고 스키 점프까지 지금은 대부분의 종목에서 여성에게 문호가 개방됐다.
이렇게 종목의 개방성 면에서 스포츠의 남녀평등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정식종목 채택 기준에서 남성만 하는 종목보다는 남녀가 모두 즐기는 것을 중요시한다. 실제 2024 파리올림픽은 남녀 선수 출전 비율을 50대 50으로 균형을 맞추는 역대 최초 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축구나 복싱을 하지 말라는 벽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벽이 존재한다. 이런 종목들은 여성끼리만 즐기고 남성들이 하는 영역으로는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가장 인기가 많고 큰돈이 오가는 프로스포츠는 확실히 남성 중심적이다. 거대 프로스포츠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성의 자리는 치어리더일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다른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백번 양보해 여성들을 프로야구나 NFL,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뛸 수 있게 한다고 하자. 그렇다 한들 남성보다 신체적 한계가 분명한 여성들이 경쟁력은 없을 것이 분명한데 성차별을 이유로 무조건 함께 뛰게 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주장하는 본질이 그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많은 여성들은 신체적 차이를 무시하는 기계적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 분야에서도 분명 여성도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당장 스포츠 행정이나 코치, 그리고 보조 플레이어로서 역할까지도 남성들만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전정신 넘치는 여성들이 이런 편견을 부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보수적인 MLB 무너뜨린 여성들
성 평등 면에서 가장 보수적인 종목이 미국 메이저리그(MLB)였다. 선수들의 공간인 클럽하우스에 여성 기자의 출입이 허락된 것이 1978년으로 그것도 한 여기자의 소송으로 얻어낸 것이었다.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2020년 이제는 여성이 구단 운영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올라섰다. 마이애미 말린스가 지난달 중국계 여성 킴 응(51)을 신임 단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응은 MLB뿐 아니라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최초의 여성 단장으로 공고해 보였던 유리 천장에 큰 균열을 냈다.
소프트볼 선수 출신의 응은 199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인턴 직원으로 야구계에 발을 들였다. 동료 직원들이나 선수들로부터 아시아계 여성이란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성희롱에 시달렸지만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29세의 나이에 뉴욕 양키스 부단장에 올랐다. 이후 LA 다저스 부단장을 거쳤고 2005년부터 무려 7개 구단의 단장 면접을 봤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후 MLB 사무국 수석 부사장으로도 10년 가까이 지내다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단장이 됐다.
MLB 코치 자리도 ‘금녀의 벽’이 허물어졌다. 저스틴 시걸이 2015년 교육리그에서 초청 인스트럭터로 합류한 것을 시작으로 마이너리그에 한두 명씩 여성 코치들이 진출하더니 드디어 지난 1월 알리사 내켄(30)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코치진에 합류, MLB 역사상 최초의 여성 빅리그 전임 코치가 됐다. 그는 시범경기 기간에는 1루 코치로 나서 MLB 최초로 필드 위에 나선 여성 코치로도 역사에 남았다.
◆축구와 NFL을 넘어 NBA까지 진출한 여성들
축구와 NFL, 미국프로농구(NBA) 등에서도 남성들이 지배하는 각 분야에 여성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축구에서는 심판으로 남성의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미 세계 각국의 프로축구에 여성심판들이 적지 않게 진출했지만 유럽대항전 같은 큰 경기 주심으로 기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여성 주심 스테파니 프라파르(37)가 지난 3일 열린 유벤투스와 디나모 키예프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리그 경기를 운영해 여성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주심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여기에 일본 여자축구의 레전드 나가사토 유키(33)는 지난 9월 남자팀 하야부사 일레븐에 입단하는 도전을 택했다. 비록 가나가와 지역리그에서도 2부에 속한 약팀이지만 그의 도전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미식축구에서도 여성 코치와 심판에 이어 이제는 여성 선수까지 나섰다. 주인공은 새라 풀러(21)다. 그는 지난달 대학 미식축구팀인 밴더빌트 코모도스 소속으로 5대 리그(파워 5)의 하나인 ‘사우스이스턴 콘퍼런스’(SEC)에 여성 최초로 키커로 출전해 역사를 썼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2014년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여성 최초로 풀타임 코치가 된 베키 해먼(43)이 최초의 여성 감독을 노리고 있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해먼은 지도자로 변신한 뒤 남자 선수들에게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 중이다. 2020~2021시즌을 앞두고는 오클라호마시티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의 아래에 있었던 베테랑 센터 파우 가솔은 “해먼은 감독 자질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나를 보고 도전하라
힘겹게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벽을 넘은 이들은 입을 모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보고 용기를 갖고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MLB 첫 여성 단장에 오른 뒤 응은 취임식에서 “단장 면접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이름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 계속 도전했다. 그래야만 내 뒤를 밟는 여성들도 할 수 있을 테니까”라고 말하며 그동안의 도전에 의미를 부여했다. 유럽 최고클럽 대항전을 이끈 프라파르 주심도 평소 “내 커리어가 젊은 여성들에게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식축구 대학 최고리그에 처음 출전한 여성이라는 역사를 쓰는 날 풀러는 경기를 마친 후 “다른 여성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NBA 코트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해먼도 “일평생 면전에서 문이 쾅 닫히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도 내가 성공하든 비참하게 실패하든 내 뒤에 있는 여성들과 소녀들을 위해 기꺼이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자신들의 길을 따라올 이들을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K리그 첫 女심판 임은주, 남자 아이스하키팀 女코치 신소정
올해 영화와 소설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야구 소녀’라는 작품이 있다.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 선수인 주인공이 프로구단 입단에 도전하지만 제대로 된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을 다룬 내용이다. 주인공의 어머니조차 딸의 도전이 무모하다며 무시하자 참다못한 아버지가 “우리 애는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애야. 그러니까 우리가 도와줘야지”라고 외치는 장면은 한국에서 여성이 남성 스포츠에 도전할 때 부딪히는 벽이 얼마나 큰지를 느끼게 한다. 실제 한국 프로야구 출범 당시에는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부적격 선수’라는 규정이 있을 정도였다. 이 규정은 1996년 삭제됐지만 여전히 심리적으로는 남아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도 남성들만이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세계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선구자 격은 축구 심판을 거쳐 프로구단 수장까지 지낸 임은주(54) 전 강원 FC 대표이사다. 1997년 국내 최초로 여자축구 국제심판이 됐고 K리그 최초의 여성심판으로 활약한 그는 심판으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1999년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심판에, 2000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최우수 심판에 선정됐다.
그리고 2012년 행정가로 변신해 빚더미에 시달리던 강원FC 대표를 맡아 팀 재정을 정상화하며 주목받았지만 2015년 성적 부진 등으로 해임됐다. 이후 FC 안양 단장을 거쳐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의 단장으로 전격 발탁돼 다시 한 번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안양 시절 구단 운영에서의 잡음과 야구에 무지한 하키 남북단일팀 골리로 활약했던 신소정(30)은 올해 남자 아이스하키 실업팀 대명 킬러웨일즈에서 코치로 기용됐다. 당연히 한국 여성 최초다. 캐나다 유학파로 비디오 분석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신 코치는 “대명에선 내가 가진 경험과 능력만 봤다. 이젠 거기에 보답할 차례”라며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다.
‘야구 소녀’처럼 프로는 아니더라도 남자 선수들과 함께 경쟁하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는 선수도 있다. 한국 여자야구대표팀의 에이스인 김라경(20)이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 지난해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진학한 뒤 서울대 야구부에서 남자 선수들과 운동하고 있는 그는 “한국 여자 야구의 저변을 넓히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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