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이은주 이후 ‘실수’ 인정하며 입장 철회했지만 속수무책
국민의힘 ‘해직공무원 노조법’과 엮어 계류 막아

비례대표 전략공천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던 공직선거법 조항이 1년 만에 사라졌다. 거대 양당의 담합 속에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추천절차 법정화’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따르면 그동안 47조2항에 있던 ‘정당은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추천할 후보자를 결정한다’는 조항이 폐지됐다.
이 조항은 ‘비례대표 전략공천 금지법’으로 통했다. 지난해 공직선거법을 바꾸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할 때 민주적인 절차를 도입하고자 범여권에서 입법한 내용이었다. 그동안 비례대표는 당대표와 주요 중진들이 ‘자기 사람’을 꽂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를 정치개혁을 하면서 20대 국회 때 역점을 두고 바꿨는데 1년 만에 용도폐기된 것이다.
지난달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2소위원회에서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논의가 이뤄졌다.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추천절차 법정화 폐지 관련해 국민의힘 장제원·권성동 의원이 발의한 내용도 안건에 올랐다. 하지만 논의는 이견 없이 허무하게 끝났다.
#장면1. 11월 5일 행안위 법안소위 첫 회의. ‘속전속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문위원 장지원 “개정안들의 주요 내용은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 절차에 따라 후보자를 결정하고 해당 절차를 중앙선관위에 제출하도록 하는 현행법에 명시된 비례대표국회의원 후보자 추천 절차를 폐지하자는 것입니다.
검토의견은 개정안은 정당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취지로 생각됩니다. 비례대표후보자 추천 법정화 폐지 여부는 현행법에 따른 절차가 정당 내 의사결정의 민주성․투명성 확보에 기여하는 정도와 당내 의사결정에 대한 정당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할 사안으로 생각됩니다.”
이상입니다.
◯소위원장 박완수 “선거관리위원회 입장 말씀해 주세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사무차장 박찬진 “검토의견과 같습니다.”
◯소위원장 박완수 “위원님들 의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은주 위원 “저도 일단 후보자 추천은 자율적 결사체인 정당이 공적 책임을 갖고 진행하는 게…… 정치적 행위로 법에 이렇게 규제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관련해서 공직선거법 개정, 정당법 개정안도 발의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소위원장 박완수 “이 안에 동의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이은주 위원 “예.”
◯소위원장 박완수 “또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이해식 위원 “동의합니다.”
◯소위원장 박완수 “그러면 다른 의견이 없으면 이 안건은 통과된 것으로 의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안건은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까지 크게 이견이 없이 통과됐다.”

#장면2. 11월23일 행안위 법안소위 유사 안건 올라왔으나 이미 개정해 넘어감
지난달 23일 유사 안건이 다시 올라왔다. 장 전문위원은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추천절차 법정화 폐지 관련으로 장제원·권성동·김은혜 의원안 관련”이라며 “이것도 개정 이미 하셨기 때문에 별도로 설명 안 드리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비례대표후보자 추천절차 법정화 문제 관련해서 지난 11월 5일 소위 때 제가 한 발언은 정당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얘기한 것”이라며 “이 법안 같은 경우 당시 해당 조항이 제기된 맥락이 준연동형 비례제 폐지 내용과 묶여 있는 것에 대한 걸 제가 착각을 했다. 그래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개정안이 발의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고려했을 때 해당 조항의 폐지에 찬성했던 지난 입장을 철회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물이 엎지러진 뒤였다.
#장면3. 12월1일 행안위 전체회의
법안심사 소위에서 통과된 안건은 전체회의로 넘어온다. 쟁점법안이 아닌 이상 전체회의에서도 일사천리 되는데 여야가 합의한 안건이어서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절차 법정화 폐지는 무난하게 넘어가는듯했다. 하지만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이은주 위원 -오늘 상정된 공직선거법 일부개 정법률안(대안) 관련해서요,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추천절차 법정화를 폐지하는 안이 올라왔습니다. 사실 제가 1차 법안심사소위 때 정 당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앞으로 정치관 계법을 다루어야 된다라는 취지의 발언과 이 부 분에 대한 찬성의견을 밝혔으나 나중에 보니 이 부분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연계된 개정안이었기 때문에 2차 법안심사 때 발언 취소와 반대 입 장을 명확히 표명을 하고 과정을 설명드렸습니다. 그래서 소위에서 합의되지 않은 부분인데 비례 대표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추천절차 법정화 폐지가 여기 전체회의에 상정이 됐기 때문에 이 부분 에 대해서는, 이 조항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고요. 다시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법안심사2소위에 재회부 해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하지만 소수야당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나마 민주당 박재호 의원은 “한 번 더 할 수 있도록(계류하자)”고 동조했다. 그러자 2소위원장인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추천 법정 문제도 11월 5일 제2차 법안심사2소위 할 때 이은주 위원, 이해식 위원께서 찬성의견을 내 가지고 소위원장이 통과된 것으로 정리를 했다”며 “단지 그때 같이, 관련 법안 때문에 의결만 안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11월 23일 5차 법안심사2소위 에서 이은주 위원께서 과거 찬성했던 입장을 철 회한다는 발언을 했다”며 “해직공무원 특별법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추천 이게 다 1·2소위를 거쳐서 지금 상임위에 왔는데 만약에 하나를 다시 법안 소위에 회부한다고 하면 같이 법안소위에 회부해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만약에 이렇게 해서 위원 들이 법안소위 거쳐서 올라온 부분에 대해 상임위에서 위원 한 분이 문제 제기를 한다고 이게 다시 법안소위로 가게 되면 앞으로 법안소위 의결이나 운영 과정에 문제가 조금 있다”고 지적했다.
서영교 행안위원장은 법안을 계류시키도록 의견을 모았으나 박완수 의원이 격렬히 반발했다. 박 의원은 재차 비례대표 관련 법을 해직공무원을 노조로 인정하는 법과 연결시켜서 통과를 할 것이면 두 법을 같이 하고, 아니면 둘 다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잠시 정회를 했고, 돌아온 서 위원장은 해당 법을 통과시켰다.

#장면4. 12월9일 국회 본회의장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반대토론에 나섰다.
“존경하는 박병석 국회의장님, 그리고 선배 동료 여러분. 정의당 장혜영 의원입니다. 현행 헌법 제8조제2항은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구성과 활동, 당론 결정의 모든 과정은 반드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진행되어야 하고, 이 원칙은 공직선거에 있어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에 있어서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합니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지난 20대 국회를 떠올려 봅니다. 당시 공직선거법 개정 당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추천과 관련하여 ‘민주적인 심의 절차’를 강조하며 관련 서류들의 제출과 공개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 등록 무효로 하도록 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8조제2항과 관련 ‘정당에 대하여 정당의 자유의 한계를 부과하는 것임과 동시에 입법자에 대하여 그에 필요한 입법을 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이런 의무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국회에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회의에 상정된 이 공직선거법 대안은 지난 국회에서 우리가 애써 만들어낸 민주적 정당 활동의 조성을 위한 비례대표 경선 절차의 법정화를 폐지하고, 다시 ‘돈공천’ ‘밀실공천’ ‘정당지도부의 내리꽂기 공천’이 난무하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비민주적인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런 독소조항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을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모든 의원 여러분께서 반대해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의 ‘폭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제도이다. 제도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제도를 위해 행동함으로써 그 제도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우리의 제도가 어떻다는 말은 하지도 마라.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 그 중 무엇이든 처음부터 보호받지 못하면 제도는 하나씩 차례로 무너져내린다.’
존경하는 박병석 국회의장님, 그리고 선배 동료 여러분.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의 정신을 실현하는 소중한 제도를 우리가 지켜낼 수 있도록, 아무쪼록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에 대하여 반대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혜영 의원의 간곡한 호소에도 개정안은 재석 265인 중 찬성 174명, 반대 72명, 기권 12명으로 가결됐다.
20대 국회에서 이뤄낸 정치 개혁이 한 순간에 무너진 꼴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 스스로가 퇴행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선거법이 후퇴했다. 비례대표 제도는 당 지도부에서 전략공천을 하거나 아무나 세울 수 있어서 그러면 취지에 어긋나기에 이를 보완하고자 공정하게 경쟁해서 후보와 순위를 정하자고 나온 제도였다”며 “정당들이 비례대표를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로 활용하겠다는 노골적 의사가 드러난 법 개정이다. 정말 정치 후퇴”라고 우려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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