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6월 21일 프랑스의 공항 설계·엔지니어링 전문업체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신설될 ‘동남권신공항’ 입지로 김해공항 확장안을 발표했을 때 정부세종청사 기자회견장이 술렁였다. 경남 밀양도 부산 가덕도도 아닌 전혀 새로운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신공항 입지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갈등하던 두 지역을 단번에 수긍시킬 수 있는 ‘신의 한 수’라는 말이 나왔다. 이후 이 공항은 ‘영남권신공항’으로 불리다 ‘김해신공항’으로 다시 이름을 바꿔 2018년 12월 건설 기본계획(안)이 마련됐다.
발표 당시 국토교통부와 ADPi는 김해공항 활주로 서측 방향에 40도로 이격된 길이 3200m, 폭 45m 활주로 1본을 추가해 기존 활주로와 ‘Ⅴ’자 형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하면 굳이 공항을 옮기지 않아도 연간 3800만명의 여객처리 용량을 갖춘 관문공항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언론과 지역사회 등에선 김해공항에 단순히 활주로만 1본 더 건설하는 것으로는 2002년 착륙하던 중국 민항기가 북측 돗대산에 부딪혀 추락한 사고와 같은 일을 막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김해공항은 돗대산 외에도 북동쪽에 금정산, 남동방향 승학산, 북서방향 임호산, 경운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국내에서도 유난히 이착륙이 어려운 공항으로 꼽힌다.
이에 국토부는 “신규 활주로가 북측 산악 장애물 저촉을 피하고, 대규모 수요 처리도 가능하다”, “산악 장애물 절취 없이도 안전한 운항이 가능한 것으로 기본계획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해명하며 신공항을 밀어붙였다.

이들 산악 장애물이 김해신공항의 운명을 갈랐다. 17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김해신공항 신설 활주로 진입 방향에 있는 산악 장애물인 오봉산, 임호산, 경운산 등을 절취하는 게 공항시설법상 원칙이라고 봤다. 국토부 등이 이들 산악 장애물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활주로를 추가 건설하는 기본계획을 세운 게 법 위반이라는 의미다. 또 만일 이들 장애물을 그대로 두려면 지방자치단체장과 먼저 협의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 국토부와 ADPi가 법으로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검증한 절차상의 하자를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검증과정에서 국토부는 “공항시설법, 항공안전법에 따라 이착륙에 지장이 없는 비행절차 수립이 가능하므로 장애물 절취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검증위원회는 법제처에 이와 관련한 법령해석을 의뢰해 “국토부 측에 법 취지에 위배되는 오류가 있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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