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방안에 대해 정부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 인수가 성사되면 세계 10위권의 초대형 국적항공사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의 빚이 막대한데다 대한항공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고, 국내·해외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도 쉽지 않아 실제 성사까지는 험로가 예고돼 있다. 양사 노동조합은 긴급회동을 열고 인수 성사시 닥쳐올 파장을 논의하기로 했다.
◆금융위 “좋은 방안이면 마다 안 해”
금융위원회 도규상 부위원장은 13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안에 대해 “아주 상식적으로 얘기했을 때 좋은 방안이면 정부로서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라고 말했다.
도 부위원장은 이날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자금 투입의 최소화, 경영이 어려운 기업의 정상화 지원을 통한 고용 안정, 산업 경쟁력 강화 등의 측면에서 산업은행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은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고 다양한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정부로서도 굳이 뭐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매각이 무산된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 아래 두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이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투자하고, 한진칼이 금호산업이 가진 아시아나항공 지분(30.77%)을 인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부는 이르면 16일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산경장)를 열고 한진그룹의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도 이미 수개월 전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산업은행과 논의하는 등 인수 의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 부위원장은 “산경장 회의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답했다.
◆막대한 빚·인수자금 마련부터 과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세계 10위권의 초대형 항공사가 탄생하게 된다. 앞길은 순탄치 않다. 아시아나항공의 막대한 부채부터가 걸림돌이다. 올해 6월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2291%로 부채 규모가 12조원이 넘는다. 1년내 갚을 의무가 있는 유동부채는 4조7979억원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그간 국책은행으로부터 지원받은 3조3000억원을 이미 소진했고, 최근 기간산업안정기금 2400억원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대한항공의 인수자금 마련도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지난해 대비 90% 수준으로 급감함에 따라,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신청할 예정이다.
두 항공사의 결합에 따른 독과점 이슈도 큰 변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해외 시장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는 데 성공할 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수가 성사되면 국내 항공업계는 1988년 아시아나항공 설립 이후 32년 동안 유지된 ‘투톱’ 체제가 막을 내리고 대한항공의 독주 체제로 전환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단번에 규모가 세계 10위권으로 올라가게 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세계 항공 운송 통계 2020’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여객 RPK(항공편당 유상승객 수에 비행거리를 곱한 것) 기준 세계 항공사 순위에서 대한항공은 18위, 아시아나항공은 32위다. 두 회사를 합치면 10위인 아메리칸 항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보유 항공기는 249대가 된다. 에어프랑스(220여대), 루프트한자(280여대) 등이 세계 10위권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선 수송객 점유율은 자회사까지 합칠 경우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선 점유율은 대한항공은 22.9%, 아시아나항공은 19.3%다.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양사의 저가항공사(LCC) 점유율까지 더하면 62.5%에 달한다.

◆“주주 무시…경영진 지위 보전용 아닌가”
인수설이 알려지자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맞서온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즉각 반발했다. KCGI는 이날 ‘한진칼,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입장’을 내고 “다른 주주들의 권리를 무시한 채 현 경영진의 지위 보전을 위한 대책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KCGI는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조현아 전 부사장, 반도그룹과 3자연합을 이뤄 조원태 현 회장과 대립해왔다.
KCGI는 “산업적 시너지와 가치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 재무적으로 최악의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그룹에 편입시키는 것은 임직원의 고용과 항공안전 문제 등 고객들의 피해와 주주 및 채권단의 손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충분한 검토와 투명한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진칼은 기발행된 신주인수권의 행사와 비핵심 자산 매각 등을 통해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며 “현재 외부 자금 지원이 필요한 기업은 한진칼이 아니라 대한항공”이라고 지적했다. KCGI는 “주주연합은 한진칼의 실질적인 최대주주로서 채권단과 정부 당국 및 한진칼 경영진과의 회합을 포함한 심도 있는 대화를 정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두 항공사 노동조합도 긴급회동을 열고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KAPU), 대한항공노동조합,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동조합(APU), 아시아나항공열린조종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등 6개 노동조합은 다음 주 초 서울 시내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노사정협의회 구성을 제안할 계획이다.
노조 측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해 직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채권단과 사측, 노조가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노사정협의회 구성을 사측에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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