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도층 말의 영향은 지대
정치권 막말로 남남갈등 심화
사회 분열·공동체 추락 위험성
언어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언어를 통한 소통이 있기에 인간은 공동체를 구성하여 문화를 창조하고 계승·발전시킬 수 있었고 인류 문명이 화려하게 꽃필 수 있었다. 만일 언어를 통한 소통이 없었다면 문명이 존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언어는 단지 존재함으로써 그 기능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언어를 조탁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한편으로 언어를 통한 소통이 더욱 정확하고 활발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를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예로부터 말에 마법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던 것도 언어가 갖는 이러한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른바 사회지도층에서 언어의 긍정적인 역할보다 부정적인 힘을 더 크게 사용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막말이 심해지고 있는 정치권의 언어 사용을 들 수 있다. 여당 대표를 비롯한 여권에서 즐겨 쓰는 수구꼴통, 보수궤멸, 토착왜구 등의 말이나, 이에 대응하는 야당 정치인들의 진보꼰대, 종북좌빨 등의 표현은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비난하고 격하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상대방과 더불어 자신의 격도 함께 떨어뜨리게 된다.
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발전시켰던 영국에서는 국왕 세력과 귀족 세력, 시민세력이 오랫동안 서로 연대하거나 경쟁하면서 피 흘리는 정치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영국 의회 내에서 이 세력들이 토론하는 과정에서는 격식에 맞는 언어만을 사용하는 전통이 확립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의회 밖에서는 피 흘리며 싸울지라도 의회 내의 토론에서는 국가지도자로서의 격을 유지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말은 그런 힘을 갖는다. 특히 이를 지켜보는 국민에게 사회지도층의 말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처럼 상대방을 비하하는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면 자신의 격도 함께 떨어진다는 것은 왜 생각하지 못할까.
우리나라에서 막말이 문제 된 사례는 많다. 심지어 재판과정에서 판사의 막말이 논란 된 적도 있고 대학 강의 중에 교수의 막말이 문제 된 경우도 있다. 그래도 판사나 교수의 막말은 일부 문제 있는 판사나 교수의 일탈로 치부될 수 있었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막말 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비판보다는 추종과 확산이 대세가 되고 있다. 정치 과정에서 국가 질서의 기본방향이 결정되는데, 정치권의 막말이 국민과 국가 질서에 미치는 파장은 어떠할까.
결국 정치권에서 비롯된 편 가르기 진영논리가 대한민국의 경제적·사회적 갈등을 극단화시키고 적대적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남북갈등보다 남남갈등이 더 심각하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막말이 기승을 부리고 막말을 잘하는 정치가 승리하는 그런 사회가 되는 것인가.
막말이 승하는 사회의 종착점이 어디인지는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막말은 적대감을 키울 뿐만 아니라, 사회를 분열시키고 국가공동체를 추락시킨다. 증오의 감정을 앞세워서 상대 진영을 비난하는 막말은 합리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오로지 순간적인 감정에만 매몰되어 극단적인 판단을 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갈라지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 선례는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도 무수히 발견된다.
지금 우리는 마치 제 몸이 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막말에 취해 우리의 미래를 맹목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찌 보면 막말이란 한순간의 해프닝이 될 수도 있고 우스갯소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치권의 막말은 이미 그 단계를 넘은 지 오래다. 이대로 계속 나간다면 막말로 인해 대한민국이 몰락하는 것도 머지않은 장래의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막말의 위험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깨치고 극복해야 한다. 우리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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